21세기 출발 시점부터 외국산 축산물의 유입을 막았던 빗장이 풀리자 호시탐탐 국내 축산물 시장을 노려온 축산 강국들의 대한국 수출량이 증가했다. 가격도 국내산의 절반 혹은 3분의 2로 저렴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경쟁 자체가 되질 않았다.

“생존권이 박탈당했다”·“축산농가 모두가 다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과 분노가 연일 대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2015년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뚜렷한 경쟁력 제고 대책도 없이 열어 버린 탓에 불안감이 팽배했다. 그 즈음 ‘품질 경쟁’이라는 말이 나왔다. 가격으로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으니 품질이 보장된 국내산이, 푸드 마일이 긴 외국산과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품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소비 패턴 연구 시작

 

정부가 축산정책으로 내 건 것이 바로 축산물의 ‘브랜드’화이다. 정부의 브랜드 정책은 국내산 축산물의 품질을 상향·균일화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일차적 목적과 이를 통해 개별화된 농가를 조직화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이차적 목적이다. 이 브랜드화가 지금껏 정부의 축산정책 중 가장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명맥을 유지해 온 것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랜드 정책이 이전과 이후의 축산업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외부적 효과보다 내부적 효과가 훨씬 크다. 모든 정책과 지원과 인식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브랜드 정책이 현 시점에서 개선 과제로 변질되긴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아야 할 공(功)임에는 틀림이 없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개념이 ‘테이블 투 팜(Table to Farm)’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다. 소비자의 의식을 연구하고, 소비 패턴을 공부하고, 그에 맞게 생산방식도 차츰 바뀌게 됐다.

지역 자체의, 또는 조합 독자의 로컬브랜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광역브랜드가 생기면서 브랜드 법인체들도 생겼다. 그리고 축산 농가들은 소비와 판매까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움(?)에 처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생산만 하면 그럭저럭 살아왔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가를 조직화하고 판매를 전담해야 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협동조합의 역할론이 더 커졌다. 협동조합이 ‘돈장사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개혁론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쯤이다. 농협중앙회가 ‘농가는 생산, 협동조합은 판매를 전담한다’는 「판매농협」의 기치를 내세우게 된 배경이다.

 

경제사업 나몰라라

 

특히 도시조합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축산경제는 2012년 7월 도시조합들과 판매시설 확대 등 경제사업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도시조합축산물유통협의회’가 발족했다. 협약 내용은 ‘축산농가가 생산한 축산물을 잘 팔아주는 「판매농협」으로 거듭나기 위해 소비지 축산물 판매시설 확대 등 판매 역량 강화에 총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었다.

도시조합은 정부의 도시화계획에 따라 축산 농가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경제사업보다는 신용 사업장 확대로 이어졌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도 조합 내 경제사업 비율이 20% 내외에 불과한, 말 그대로 은행 창구 역할만 해 왔다. 조합 규모가 몇 조에 이르고, 몇백 명에 불과한 조합이 3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지도사업비로 쓰고, 어떤 조합은 전이용대회를 가려고 전세기를 띄우려고 계획할 정도였다.

고율의 출자와 이용고 배당이 이뤄졌고, 축산을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하면서도 이러한 이익 때문에 조합원 자격을 놓지 않았다. 이들의 역할을 강제하기 위해 중앙회가 경제사업장을 활성화하지 않는 조합에 대해서는 신용점포 신규 개설 제한 등 각종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하면서 도시축협들은 마지못해(?) 판매장을 개설했다. 대부분 도시조합들의 판매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몇 몇 조합을 제외하곤 적자요, 애물단지화 되어 있다. 왜 ‘마지못해’였는지 한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할 지도 모르니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에도 서투르다.

 

진정한 의미 알아야

 

당초 업무 협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협의회가 필요했던 것은 ‘판매처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농촌조합과의 연계를 통해 생산·소비지의 원활한 유통’이었다. 자체 조합원이 생산하는 축산물만을 팔아주기에는 애당초 물량도, 사업 활성화도 기대하기 힘든 구조이다.

생산지 조합들은 판매망 확보를 못해 어떻게 하면 대도시로 진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자체 자금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지자체의 도움을 통해 알음알음 진출해 보지만 일반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이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한다. 때문에 도시 조합과의 연계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판매농협의 실현은 이렇게 생산·소비지 조합의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질 때 가능한 일이다. 지역 조합이 생산하는 축산물을 중앙회 단독으로 팔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악농협의 지역조합들과의 연계는 좋은 본보기이다. 협동조합 특히 도시조합의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제사업을 하지 않는 조합은 조합의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살길은 생산지조합과의 연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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