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신시내티를 중심으로 노동의 분화가 시작된 미국의 정육산업은 도축과 정육산업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대형 돼지우리들이 정육공장 옆에 지어졌고, 잔인한 도축을 거쳐 ‘해체실’로 가는 설비를 갖췄다. 1850년대와 1860년대 초반 철도의 전국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의 정육산업은 그 중심지가 시카고로 옮겨 갔다. 그리고 1865년 ‘무차별 도축’으로 이름난 유니언 스톡 야즈(Union Stock Yards)가 개장됐다.

 

바위생 낱낱이 공개

 

호텔, 식당, 살롱, 사무실 그리고 서로 연결된 2300개의 축사가 들어선 이 거대한 복합 건물은 남서부 시카고에 약 78만평의 땅을 차지하는 거대한 시설이었다. 여기서 1900년까지 도축된 가축들은 모두 4억 마리에 달했다. 당시의 열악한 환경과 비위생적인 도축 과정이 문제되면서 1905년 고기 검역 기준을 도입하려던 의회 법인이 정육산업의 로비에 의해 저지됐다. 이에 사회주의 성향의 주간신문 「이성의 호소(The Appeal to Reason)」는 탐사보도를 계획하고, 당시 사회주의자이자 최고의 부패탐사 작가인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에게 시카고 정육산업을 파헤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7주를 지내면서 유니언 스톡 야즈와 주변 인근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을 취재했다. 매일 누더기 옷을 입고 들통을 들어 나르며 유니언 스톡 야즈로 들어가 자기가 목격한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동부로 돌아와 뉴저지 프린스턴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9개월 동안 기록을 정리한 소설 「정글(The Jungle)」을 펴냈다.

이 소설이 「이성의 호소」에 연재되자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책으로 펴내려 했던 몇 몇 출판사들이 정육산업 권력자들의 다양한 협박을 받아 출판을 포기했지만 ‘더블데이 페이지 앤 컴퍼니’에 의해 결국 출간됐다.

정글은 도축장의 끔찍한(?) 세계를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 내용을 보면 너무 자세한 나머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망치로 때리거나 기절총을 쏘고, 틀에 걸어 짜르고, 토막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작업장은 피와 내장들로 범벅이 되어 있고, 반품된 상한 고기와 작업자의 침이 섞인 고기, 상한 물, 심지어 죽은 쥐도 소시지 제조에 들어 간다.

 

충격이 ‘위생’ 일깨워

 

미국 축산업에서 「정글」이 기념비적이라고 할 만큼의 평가를 받는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그들이 먹는 축산물이, 그들의 입으로 올 때까지의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이 먹는 병들고 부패한 정육에 경악하게 함으로써, 출판 6개월 만에 의회로 하여금 ‘식품 및 약품 위생법’과 ‘쇠고기 검역법’이라는 새로운 정육검역법 2개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 제작한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인디다큐페스티벌에 초청된 데 이어 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돈가스 마니아’인 아들과 남편이 함께 동행한 ‘밥상의 돼지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역으로 추적하는 과정이다.

내용은 미국의 문화비평가 겸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Beyond Beef)」처럼 광범위하기 보단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겸 환경보호자인 마이클 폴란(Micheal Pollan)의 「잡식동물의 딜레마(Omnivore's Dilemma)」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들의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의 축산 현실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말처럼 그가 햄버거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육식을 끊은 지 2년 째쯤 다시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육식의 유혹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산업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높아졌지만,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육류 소비가 30년 새 4배 증가한 50여kg임을 감안하면 육류 소비가 오히려 늘고 있는 것도 유혹(?)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입증하는 사례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FMD와 AI에도 이전에 발병 때처럼 대중들은 충격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잇따라 식당이 폐업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한차원 발전 계기로

 

아마도 그동안의 홍보효과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소비자들도 시큰둥이다. 심지어 한 식당주인은 “FMD나 AI가 발생한 당시는 뜸하지만 한 3일만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일반인들 역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육류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감독은 다시 육류를 끊었지만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본 많은 이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도 육식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소설 「정글」처럼 ‘동물의 건강해야 할 권리’에 대해 논의하고, 올바른 육식 문화를 위해 바뀌어야 할 조건들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이야기해 보자는 말일 것이다.

도축장의 킬 라인(Kill Line)을 보고 나면, 그 현장이 아무리 청결하다고 해도 식성이 좋고, 육류를 애호하는 사람일지라도 편하게 고기 한 점을 집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있고, 그를 바라보는 축산가족들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역으로 이 ‘다큐’가 한국축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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