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서 이병렬 씨가 축산업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경종농가였던 아버님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지으면서 알음알음 가축을 한 두 마리 늘려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양돈업에 뛰어 들었다. 그 동네는 민가도 별로 없고, 도시민들과 마주치는 일은 인근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돼지가 1000여 마리로 불어날 때까지도 그는 별탈이 없었다.

 

민원으로 편할 날 없어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양주시의 도시개발사업으로 토지 보상이 이뤄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씨의 양돈장은 직접 수용 대상이 아니어서 예전처럼 돈사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이 씨는 각종 민원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냄새가 난다는 둥, 집 값이 떨어진다는 둥 시도 때도 없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민원이 날아들면 공무원이 나와 규정에 벗어나는 일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씨는 그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은 온전히 수십년 동안 한 자리에서 가업을 이으면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한우물만 파 왔는데, 이 시골 아파트로 이사 온 외지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에 ‘감 내놔라 대추 내놔라’ 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더니 이게 꼭 그 꼴이었다.

시 공무원은 하도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 축사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은근히 협상도 제의했다. 주민들은 오고 가며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는 둥 마치 이 씨를 보상금 노리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 씨는 그런 그들의 매도로 결국 생업을 접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천이던 그 이외 지역에서 떠밀리다 시피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새로 양돈장을 짓는 일이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속 사정을 모르는 아파트 주민들이 야속했고, 무작정 양돈업을 오물투기산업으로 규정짓는 지자체의 몰이해에도 울화가 치밀었다.

 

지방조례 뒷받침한 꼴

 

환경부의 새로운 가축사육제한 거리 권고안이 발표됐다. 이번 권고안은 기존 지자체의 지방조례보다 훨씬 강화된 것으로 ‘제한거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기존 지방조례의 불합리한 기준이나 남용, 산업에 미칠 영향 등과 관계없이 오히려 그러한 지방 조례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해 준 꼴이다.

타 축종의 경우 기존 권고안보다 대부분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양돈의 경우엔 강화돼 ‘제한거리’에 걸리지 않는 농가가 없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양돈농가 모두 생업을 접으라는 말이다. ‘제한거리’는 ‘주거밀집지역’을 기준으로 하는 데 그 밀집지역이라는 최소단위가 5가구이기 때문이다. 어떤 근거로 5가구를 주거밀집지역으로 하는지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특히 이번 환경부의 ‘권고안’은 농축산부와 공동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에 따른 규제를 적용할 경우 축산업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농축산부의 무용론이 제기됐다. 어떻게 이렇게 축산업에 중요한 사항을 환경부 단독으로 진행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농축산부의 한 관계자는 “권고안에 악취저감 농가에 대해서는 사육제한을 완화하되 증개축을 가능토록 명시한 것은 우리부가 촉구했기에 가능했다”고 그것도 변명이라고 말한다.

농축산부는 축산 환경 변화에 맞춰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고 했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축산업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축산, 악취·폐수 저감 축산, 동물복지 축산이어야 한다며 ‘산지생태축산을 새 생산모델’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축산업에는 ‘핵폭탄’ 같은 사육거리 제한이나 양분총량제 등은 환경부에게 맡겨 놓고 있다.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는 격이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곤 축산업의 생존은 이야기할 수 없다. 양분총량제를 비롯 축산업의 존폐가 달린 문제들은 수 차례 지적한 바 있다.<본지 2014년 2월 7일자 「태풍전야 속 축산업」>

 

생명에는 냄새가 있다

 

이런 중요한 법적·제도적 규제 장치들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서 환경부와 함께 고민해야 할, 더구나 농축산업을 이해시키고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농축산부가 오히려 환경부의 논리에 말려 아무 주장도 펴지 못했다면 농축산부는 왜 있어야 하는가. 이번 발표된 권고안의 행간을 읽다 보면 축산업의 부정적 시각은 축산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축산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농축산인들을 대변하고 농축산업을 유지 발전시켜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는 농축산부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축산업에 부정적 시각과 몰이해로는 환경부를 설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껏 ‘악취저감 농가에 대해서는 사육제한을 완화하되 증개축을 가능토록’ 한 것을 자랑이라고 할 수밖에….

축산업은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하는 산업이다. 순전히 눈으로 즐겁고, 놀이로 즐기는 관광산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6차산업을 그저 관광만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산업에 기초하지 않으면 6차산업은 없다. 생명산업에는 생명의 냄새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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