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1세기를 눈 앞에 두고 전국 농업협동조합은 ‘개혁’이라는 된서리를 맞았다. 모든 일선 조합이 정부 감사의 대상에 올랐고, 대출비리에서부터 각종 탈·불법 사례가 방송과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당시 협동조합의 한직원은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해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가 조합의 직원이어서 놀림을 받아 학교 가기 창피스럽다”는 대답을 듣고 그때만큼 협동조합에 근무한 것을 부끄러워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직원인게 부끄러웠다

 

자신이 소속된 조합에서도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감사가 나와 각종 서류를 요청하고, 그 감사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강도 높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없이 지나갔는데도 연일 탈·불법 사례가 언론을 통해 터지니 처음엔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단다. 농협이라는 이름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방침이 협동조합의 통·폐합이었고, 강도 높은 감사가 종지부를 찍은 것은 농업과 축산업협동조합의 통합으로 연결됐으니 어떤 의미에선 다분히 ‘정치적’이었다는 의혹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15년 전의 일이 생각나는 건 ‘정치적’이라는 의혹 때문이 아니다. 농업협동조합에 관한 부정적인 보도와 기사가 그때만큼이나 넘쳐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협동조합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조합장을 뽑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일부 사례로 치부될 수 있는 행태가, 마치 모든 협동조합이 불법과 탈법 그리고 비리의 온상으로 비춰지고 있는 사실이 가슴 아파서이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위탁 선거법’ 상의 규정이 일방적으로 현 조합장에 유리하기 때문에 금품수수 등 각종 비리가 발생한다는 지적은 수긍은 되지만 ‘원인’이라는 데엔 동의할 수 없다.

협동조합의 조합장 선거가 비록 전국 동시선거의 형태를 띄고 있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단체장을 뽑는 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국의 1300여 협동조합이 동시에 선거를 치루니 규모가 커 보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학교의 회장 선거 또는 동네 잔치와 같다.

일선조합의 조합원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1000~2000명 정도이다. 도시형 조합이나 품목조합의 경우엔 1000명을 훨씬 밑돈다. 농업의 경우 면 단위에도 존재하고, 군 단위의 축협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소개할 기회 많아

 

조합은 일 년에 전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전이용대회·체육행사·각종 축산물 시식회·간담회를 포함 지역 행사 참여 등 많은 모임을 갖는다. 또한 조합 내에 사랑방을 만들어 조합을 찾는 조합원들이 쉬면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조합장 선거가 혼탁한 것은 후보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공직선거의 뒷거래에 물든 일부 후보자들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합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조합의 발전과 더불어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해 온 후보자라면 이미 조합원 사이에서는 꽤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현 조합장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해 온 탈·불법 사례라면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사·대의원 조합원들과 짜고 탈·불법을 저지르는 일부 조합장들과 그들이 그것을 위해 정리하지 않고 있는 무자격 조합원들에 있다.

일전에도 ‘전국 조합장 동시 선거와 선거 후 부정선거 등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전국적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요인이 무자격 조합원’이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공정선거를 위해 시급하게 손봐야 할 것은 ‘위탁 선거법’이 아니라 무자격 조합원의 정리이다. 일부 조합장의 경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조합장들은 무자격 조합원들을 정리했고 정리하고 있다. 심지어 한 통합축협조합장은 선거에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역 무자격 조합원 1000여명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조합 경영과 수익 배분에 있어서 진성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뺏어 자격 없는 이들에게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합 설립기준 바꿔야

 

그들은 조합 사업에 참여하지도,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 큰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조합의 파행 운영을 부추기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의 표 행사는 불법이다.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서 그들을 반드시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제정된 농협법 시행령 제2조 「조합의 설립인가 기준」을 조속히 변경해야 한다.

이 기준은 시·군 등 지역농협 조합원수는 1000명, 특별·광역시와 일부 도서 지역의 경우는 300명, 품목조합은 200명이어야 조합으로써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많은 조합이 무자격 조합원을 정리하는 데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다. 진성 조합원을 주축으로 경쟁력을 강화시켜 급변하는 농축산업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선 듯 손댈 수 없었던 것이다. 현실에 맞게 조합원수를 대폭 완화해야 하는 이유는 이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거는 축제다. 넓은 광장에서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조합 발전’이라는 지향점이 같아야 한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