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붉은 노을과 검푸르게 변색되며 꿈틀거리는 바다. 태종대 위에서 그 묘한 대조가 어우러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철수는 자신의 마음처럼 저 바다도 끊임없이 뭔가를 갈망하고, 주저하며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철수가 어릴 때부터 편협한 인간이었다. 항상 큰 형이 우선이었다. 차기 집안의 가장이니 무엇이든 그에게 집중됐다. 동생들은 그가 성공하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명목은 이랬다. 집안의 맏이가 잘되면 그 혜택이 밑으로 흘러내린다는 이유였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면 ‘낙수효과’다.

 

힘없는 막내 닥달만

 

좋은 옷은 큰 형의 몫이었고, 누나와 철수는 대물림했다. 모든 것이 맏이의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맏이도 처음엔 조금 미안한 기색을 보이다가 언제부터인지 그것이 당연시 됐다. 집안의 이같은 질서는 무언의 법이었다. 철수는 간혹 질서에 대항해 반발도 해 봤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몽둥이 찜질이었다.

누나의 경우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더 심했다. 남자의 옷을 입어야 했고, 아버지와 둘이 있을 때면 얼굴이나 어깨 어딘가는 항상 멍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꽤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그날은 누나에게 전과 달리 친절했다. 어느날 누나는 집을 나갔다.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철수는 불연 듯 왜 엄마는 자신이 두들겨 맞을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가 궁금했다. 매 맞은 날 엄마는 방안에 들어와서 철수가 한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편을 들어주긴 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될 때는 무언의 반항을 이유 삼아 집을 비웠다. 형은 질서에 대항하는 대가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늦은 밤 어두운 방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살그머니 방안으로 들어온 엄마는 철수를 달랬다. 아버지가 무식하기 때문이라는 둥, 조금만 참으면 좋아질 것이라는 둥 달래기도 하고, 이 참에 니가 집을 나가면 아버지도 정신 차릴 것이라는 둥 별 소리를 다 늘어놓았다.

거칠게 반항을 하고 그만큼의 매질을 당하고 난 며칠 동안 집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도 철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이나 철수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하는 처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돈을 불린 큰형이지만 생활비는 기대한 만큼 내지 않았다. 매달 말일이면 아버지는 빌려준 돈의 이자받 듯 생활비를 빼앗아 갔다.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그 잘난 맏이에게 돈을 달래라”고 속에서 울화가 치밀지만 그저 내란대로 내고 있는 자신이 못나 보이기만 했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맞으면서 큰 폭력에 대한 무서움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욕하면서도 그의 옆에서 빌붙어 사는 엄마가 더 미웠다. 집을 비운 동안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모여서 고스톱을 치거나 놀러 다녔다고 동네 사람들이 귀뜸 해 줘서 알게 됐다. 누나가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가정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는 누나에 대한 아버지의 성폭행을 알면서도 넘어갔단다. 누나에게 참으라고 했단다. 누나의 분노를 자신만의 행복을 이유로 넘어간 엄마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 삭여지지 않아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 위에서 한동안 뛸까? 말까?를 망설이던 철수는 마음을 바꿔 내려와 곧장 주방용품점을 찾아 잘 벼루어진 식칼을 한 자루를 사 가방에 넣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출구를 빠져 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 반가움의 웃음과 이별의 눈물이 함께 어우러진 인천국제공항 안의 광경이 한 눈에 보이는 커피숍에서, 영희는 여권과 항공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이고 탑승구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되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성폭력에 끝까지 저항하다 두들겨 맞은 날 엄마의 겸연쩍은 모습이 그렇게 흉측스러울 수가 없었다. 달려드는 아버지보다 그 모습이 마치 벌레 같았다. 불쌍한 동생 철수를 놓아두고 나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떠나기가 주저되는 것은 떠나도 분노가 식혀질 것 같지 않아서이다.

 

억울함 호소할 곳 없어

 

한동안 고민하던 영희는 건너편 식당으로 가 소주를 한 병 시켜 나발을 불고, 빈병을 손수건으로 감싸 소리 없이 병을 깬 후 핸드백에 넣고 공항을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졌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참사, 군의 폭력, 방산업체와 공무원들의 비리, 담배값 인상에 연말정산 등 각종 참사와 비리 그리고 꼼수로 얼룩졌다.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반대로 올라가야 할 야당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 후 올라설 줄을 모른다.

MB는 자화자찬의 회고록을 출간한다고 하고, 영원한 2인자인 김종필 씨는 국민을 ‘사육하는 호랑이’로 무시하는 데 주변에선 이를 명언이라고 떠받들고 있는 현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떡줄 사람 생각 없는 자기들만의 ‘진흙탕 당 대표 선출’이 한창이다. 지금 국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 슬프고 또 분하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