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7일 고성에서 발화된 산불은 15일까지 8일 동안 고성군을 비롯 삼척시, 동해시, 강릉시, 경상북도 울진군 일대 산림 2만3448ha를 불태운 대형 산불이었다. 안동에서부터 고성까지 역으로 취재를 다녔다.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에서 고성으로 가는 도중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양 옆으로 쌓인 재가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와 잠시만 열어도 매케한 냄새와 재로 차 안은 금방 엉망이 되었다.

 

대대적인 홍보 효과

 

왼쪽으로는 진초록 나뭇잎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절경으로 이름난 7번 국도는 간데 없고 짙회색으로 쌓인 재가 양 옆으로 수북이 쌓여 있어 그곳의 농민 어느 누구와 말하지 않고도 당시의 절박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당시의 상황을 듣기 위해 무릎까지 재 속으로 빠지며 바닷가에 접한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그곳도 몇 몇 가옥이 전소되거나 타다 남아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마을사람들은 일손이 잡히지 않는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겪었다는 한 어르신은 불이 그렇게 무서운지 겪어보니 알겠더란다. 강원도와 경북을 가로지르는 원덕읍 호산리와 월천리 사이 가곡천 때문에 설마 여기까지 오겠느니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단다. 바람을 타고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불티는 강을 뛰어 넘어 순식간에 옮겨 붙으며 큰 불로 번져 이곳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쳤단다. 밤이 되니 나무 타는 소리가 마치 총소리 같아 이곳이 전쟁터로 착각할 정도였단다.

고성의 산불은 1996년에도 발생했었고, 2005년 또 다시 양양 낙산사에서 발생해 낙산사와 민족문화유산 다수가 불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듬해 폭우가 쏟아지자 산불 이후 토양 결집력이 약화돼 산사태와 지반 붕괴로 이어졌다.

5년 주기로 모두 4월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국립공원이나 산을 찾는 행락객들은 불을 피울 수 있는 발화물질을 지닐 수 없게 규정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경험과 깨달음은 건조시기만 되면 대대적 홍보 등을 통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이후 대형 산불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안일함이 화를 불러

 

2010년 11월 28일 안동에서 FMD가 발생했다. 이듬해 4월 3일 이동제한이 해제되면서 126일 동안 11개 시도, 75개 시군구에서 소와 돼지 347만 마리가 땅 속에 묻혔고, 3조원 이상의 손실과 공무원 7명, 군인 1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끔찍했던 FMD를 계기로 「가축질병 방역 체계 개선과 축산업 선진화 방안」이 마련됐다. FMD 확정 판정이 나오면 즉각 심각단계로, 방역과 백신이 동시 투입되고, 발생초기 스탠드 스틸(일시정지)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백신 청정화로 방향을 바꾸면서 기본 방향도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긴급 행동지침(SOP)만이 아니다. FMD를 대하는 방역당국 관계자나 정작 FMD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게 될 축산농가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긴장감이 사라진 것이다. 몇 년 동안 FMD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발생해도 백신을 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안일함이 다시 찾아 왔다.

안일함은 무감각으로, 안전 불감증으로 나타난다. 화농이 발생한다고, 사산과 유량이 떨어진다고 아름아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 FMD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느 유업계 관계자는 ‘젖소에도 발생’했으면 하는 어처구니 없는 소릴 한다. 원유가 남아도니 이 참에 해결할 수 있다는 바램 아닌 바램이다. 그러나 발생은 ‘내 목장’이 아닌 ‘남의 목장’이었으면 이다. 이러한 농가들의 이기심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전체 축산업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축산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퇴출시키는 것이 맞다.

그러나 농가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농가를 계도하고 지도하고, 방역시스템을 수시로 감독 관리하는 것이 방역당국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FMD가 발생하기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울렸다. 현장의 상황을 알렸다. 결과적으로 방역당국 관계자들도 모두 안일하고 나태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질병의 가장 좋은 처방법은 예방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처방은 예방

 

영국의 퍼브라이트연구소는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전세계 FMD 백신의 효능을 연구하고, 농축산부에서 보낸 백신으로는 FMD를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통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방역당국은 “백신에는 문제가 없다”고 공언한다. 지난달 첫 FMD가 발생했을 때부터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백신접종을 해 항체 형성률이 90% 이상인 소에서도 발생하자, ‘항체 형성률이 높아도 소의 당시 상태에 따라 발병도 가능하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지금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방역당국은 ‘백신이 안전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백신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효능을 불신하는 전문가나 농가들에게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속내를 꺼내 놓지 않는 비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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