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질’하던 갑오년이 가고, ‘을’이 대접받는 을미년(乙未年)이다. 올해는 정말 ‘꿈보다 해몽’이 좋은 한 해가 되길 누구나 바란다. 을의 입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 대다수는 우울하고, 울컥하고, 한숨이다. 드리워진 먹구름이 당최 거둬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국’ 들먹여 구설수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2014년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애국」을 들먹여 괜한 구설수에 또 올랐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지목하면서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가 있지 않느냐? 공직에 있는 우리들은 더욱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애국이란 보수와 진보, 계층의 소속, 연령의 차이, 남녀노소와 관계없는 초월적 가치이다. 국내에 있을 땐 그렇게 피부에 와 닿지 않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해외에 있을 땐 절절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냥 ‘동해물과 백두산이…’만 나와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국에 있는 부모가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정겹고, 따뜻하다. 이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행위’는 그냥 생기는 것도 아니고, 획일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획일적’이고 ‘단선적’ 애국은 애국이 아니다. 행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동질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강요요, 겁박이요, 독재다. 애국에 점수를 매기고, 차등을 두는 순간 애국(愛國)은 애국(哀國)이 된다.

국기 배례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30년이 넘는 살 떨리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연대장을 맡았던 A는 희한하게 군인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조심해야 할 행동이 있었다. 정부를 비난하거나, 학도호국단에 대해서 특히 그랬다. 나보다 A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더 친했던 B는 조금 까불거리는 스타일이었는 데, 저녁 식사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하강식 장난에 ‘피떡’

 

저녁 식사 도중 국기 하강식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A는 수저를 내려 놓고 벌떡 일어서 부동자세로 손을 가슴에 얹고 경건한 국기 배례를 하고 있었다. 다들 놀라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때 B가 까불거리며 A의 밥을 덜어 먹었다. A는 미동도 없이 그 몇 분을 그대로 흘려 보내고 애국가가 끝나자 사단이 났다. 장난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날 B는 작살(?)이 났다. 화가 화를 불렀는 지 식탁으로 기어 도망가는 B를 A는 말릴 사이도 없이 좇아 가며 개 패듯 팼다.

A는 ROTC를 거쳐 장교로 군 복무를 끝냈다. 그와는 그날 사건 이후 몇 번도 만나지 않았다. 군에서 사고 친 여자와 결혼도 했고, 또 이혼도 했다는 소릴 들었다. 만나긴 꺼렸지만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그 친구에 대해 묻곤 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도 국기 배례 장면이 나온다. 공수부대와 시민들이 도청 앞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국기 하강식의 애국가가 흘러 나오자 시민들은 조용히 국기 배례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고 공수부대로부터 총격을 받는다. 이 두 영화의 국기 하강식 장면은 참 묘하게 겹친다. 국기 하강식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공무원의 애국은 뭐고, 국민으로서의 애국은 도대체 뭔가를 따져 보고 싶어서 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예를 들어 보자. 1700여만명이 본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무릇 장군이 지향할 바는 충(忠)이고,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무릇 충신은 임금 앞에서도 해야 할 말을 하는 공무원이다. 아첨보다는 임금의 모든 관심이 ‘백성의 안위’로 흘러가게 충언하는 자리이다.

 

애국할 분위기 조성을

 

아첨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임금이 공평하지 않거나, 상식적이지 않으며, 편협된 생각으로 공과를 구별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박 대통령의 ‘애국’ 언급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였는지는 몰라도 현재를 30년 이전의 시대로 끌고 갔다. ‘십상시의 국정 농단 의혹’이 그렇고, ‘청와대 일중대론’이 그렇다. 그 외에도 박근혜 정권의 초기 2년은 그가 내놓은 괜찮은 성적표와는 반대로 부정과 비리, 참사 등 손으로 꼽지 못할 만큼 많은 실책들이 뒤따랐다.

농축산업도 괜찮을 리가 없었다. 농민은 잇따른 FTA로 인한 피해로 힘겨워 한다. 지금도 AI에 FMD가 확산되면서 2010년 말의 악몽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발병 때부터 원인을 정한 듯 하다.

농가들이 제기하는 ‘백신의 효과성’에 대해선 강하게 부정하며 백신 미접종 농가에 대한 강력한 ‘규제 카드’를 또 빼들었다. 모든 탓이 농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발병 원인도 농가고, 확산도 농가요, 그러니 그에 대한 피해도 농가가 당연히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애국은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애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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