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설립 이념에 맞지 않게 ‘돈벌이’에만 치중했다는 이유로 농협중앙회는 자의반 타의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념을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농민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농축산물을 팔아주는 기능을 강조하면서 수년전부터 「판매농협」의 기치를 내걸었다. ‘같이의 가치’라는 명문구와 함께.

 

농업이 비지니스로

 

박근혜 대통령이 “농업을 몸소 챙기겠다”며 농축산물의 유통구조를 개선해 다단계 유통에서의 거품 제거로 생산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라는 엄명이 떨어지고 난 이후 정부 부처는 그 업무 대부분을 농협에 덧씌웠다. 「판매농협」이 급부상하게 된 동기이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또 「판매농협」을 들먹이느냐?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말이 아니라 현실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판매농협은 로컬푸드도 아니고 직거래도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 농업을 연구하는 세계의 모든 학자와 관계자들은 20세기 초 멜더스의 ‘식량 부족에 따른 기아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침울한 분위기에 젖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속에서 영양학·미생물학·유전학 등 다양한 연구들의 성과는 이러한 우려를 털어냈다.

저렴하고, 다양하고, 안전하고 품질이 좋은 곡물·육류·과일·채소 등이 다량으로 생산됐다. 대형 가축 사육시설과 집약적 농업 등 풍족함을 누리게 해 준 다양한 기법들이 발굴됐다. 이러한 저비용 대량생산 농업이 부상되면서 현대 식품경제가 탄생됐고, 기존의 농업은 농업에 그치지 않고 ‘농업비지니스’로 모습을 달리했다. 그리고 여기에 맞물려 네슬레, 유니레버, 크래프트, 타이슨, 켈로그, 다농 등 거대 식품업체가 현대 식품시스템의 정점을 찍었다.

이들 업체들은 간편한 식품을 개발해 제공함으로써 요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사람들의 식생활에 깊숙이 관여했다. 최저 가격을 지향하고, 편리성을 내세웠다. 이같은 흐름은 소비자들이 간편 식품에 의존하면 할수록 업계도 이들 제품에 의존하는 강한 상호의존성으로 나타났다.

 

가격 책정까지 간섭

 

그 결과 업체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끊임없이 신제품과 개선된 식품을 쏟아내야 하고, 간편한 식품을 더 많이 팔아야 했다. 세계가 산업 혁명의 몸살을 앓으면서 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대다수 작업장에서 장기간 일해야 했다. 식량을 직접 기를 수단이 단절됐고, 식당과 산업화된 이들 식품에 엄숙한 식사를 맡기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족관계, 문화적 정체성, 인종적 다양성 등의 모든 가치가 변질됐다.

식품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현대 식품시스템의 문제점은 월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들의 등장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한층 거세진 가격 하락 압력이 소형 생산자나 식품 잡화점을 밀어냈고,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은 농촌에서 사라져 갔다. 대형업체들은 합병 등으로 더욱 몸집을 부풀렸고, 그 결과 소수의 대형업체들이 전체의 식품과 유통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저렴한 가격과 고품질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이들 독점공급업체들의 이익지향은 공급자들의 가격 하락을 압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독점이라는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자사 제품이 식품점에서 진열·판매되는 형태 뿐만 아니라 가격 책정방식까지 개입한다.

이들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농가들의 경우 낮춰진 가격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원료를 생산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밀집사육과 경작지 확대 등 규모화를 꾀했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기계화를 도입했다. 더 많은 비용을 쏟아 부었지만 남는 이윤은 비용대비 효율적이지 못했다.

우리보다 먼저 변혁을 겪었던 유럽을 비롯한 축산선진국들의 발전 모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지금 우리가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형유통업체들이 한국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국내 유통업체들의 행태도 그들과 사뭇 다르지 않다.

 

대자본과 맞서줘야

 

처음엔 개별 농가나 로컬·소규모 브랜드와 접촉하면서 매장에 구색을 갖춰 자리를 잡고, 이후엔 각종 수수료와 행사의 미끼상품 요구가 빈발한다. 이들이 매대에서 고생하는 동안 뒤에선 자체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대규모 자본과 이미 확보한 유통망을 무기로 납품업체나 농가에게 가격할인 압박과 불공정 거래를 시도한다.

영세농가는 폐업을 하던가 규모를 늘려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FTA의 홍수는 외국산 축산물의 유입을 가속화시키고 소비자들은 갑자기 확대된 선택에 즐거워한다. 그 풍요로움의 뒤안길엔 생업을 잃는 농민들의 피와 눈물이 있고 ‘우리의 것’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판매농협」이 필요한 이유이고, 판매농협의 가치를 들먹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이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구매·생산·판매·소비 활동을 하는 것이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신해 대자본과 맞서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농협중앙회이다. 지금은 협동조합이 힘을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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