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키우는 농업, 미래를 가꾸는 농촌’·‘만들어 가요 복지농촌, 펼쳐가요 희망농업’·‘농촌사랑 우리희망, 농업사랑 우리미래’·‘가꾸어 가요 우리농촌, 열어가요 미래농업’·‘농업은 생명의 숨소리, 농촌은 희망의 종소리’·‘꿈이 가득한 농업, 사랑 가득 행복농촌’

지난 11일은 19번째 농업인의 날이었다. 그날 농협중앙회 대강당 옆 벽면에 늘어진 걸개의 내용들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이날의 슬로건도 ‘꿈을 모아 미래농업, 힘을 모아 행복농촌’이었다. 곰곰이 집어보니 언제부터 없던 희망과 꿈을 이야기 했는 지, 농업이 미래산업이 됐는 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농업인의 날 농민은?

 

아마도 FTA가 잇따라 체결되면서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농업인들이 죽겠다고 밖으로 뛰쳐 나오고,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정부가 ‘위기는 기회’라는 사탕발림과 함께 농업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나온 표어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농업인의 날은 1996년 농업이 국민 경제의 근간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11월 11일의 이유는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자가 되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안랩에서 11월 11일을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빼빼로 데이’ 대신 가래떡을 먹는 가래떡 데이로 지정해 행사를 시행하면서 이것이 확산돼 농축산부에서도 ‘가래떡 데이’를 농업인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침체된 농촌과 삶이 팍팍한 농민들의 밑바닥 의욕을 고취시키고 한국 농업의 부흥을 위해 제정된 ‘농업인의 날’은 열 아홉 번째를 치루는 동안 농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입장처럼 갈수록 축소되고 요식화되고 있다.

농민들이 축하받고 서로 축하해 주는 축제여야 할 이날이, 한 때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해 주던 의미는 사라지고, 참석한 국무총리가 허겁지겁 농민들에게 훈·포장만 전해주는 정부의 의례적 행사로 전락한 것은 주인공인 농민이 빠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특히 이번 ‘농업인의 날’에서는 참석했던 국회의원의 축사가 빠진 일로 국회농해수위원장으로부터 농축산부 장관이 ‘국회의원을 개망신 줬다’고 질타를 받는 일까지 생긴 걸 보면 농민은 정부에게만 외면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까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축사 꼭 해야 맛인가

 

“아니 국회의원이 농업인의 날에 참석한 것은 농민들을 격려하고, 농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는 적극적인 의미 아닌가? 소개를 받았으면 됐지 꼭 축사를 해야 하나? 꼭 찍어서 먹어봐야 맛을 아나?”

당시 참석했던 단체의 한 직원의 말이다. 최근 농축산관련 행사 때마다 축사니 격려사로 본 행사의 시간을 잡아 먹어 참여한 농축산인들로부터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니냐’는 원성이 잦았다. 참가한 것 만으로도 농민들은 감사해 한다.

 

미래는 현재의 연속

 

농민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 보면 대부분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은 없다. 그 억울한 농민들의 제일 억울한 이유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 자리에 국회의원이 자리해 있으니 그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직도 ‘봉사’가 아닌 ‘갑질’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주변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농촌은 그리고 농민은 지금 타들어 가는데 정부는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미래산업’을 이야기한다.

농업인의 날 하루 전날 한·중FTA가 타결됐다. 농축산업에 대한 피해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호주·뉴질랜드와 캐나다와의 FTA가 도장받기 위해 줄줄이 서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농어촌특별세」가 3년 째 정부가 정한 목표액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1조원 이상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농특세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따라 농어촌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재원 조달방법으로 1994년 신설된 목적세이다. 올 6월30일까지 20년 간 걷기로 했다가 지난해 10년 더 연장키로 했다. 농특세는 농축산부 전체 예산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때문에 최근 농축산 관련 사업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부는 영연방 3국과의 FTA만으로도 농축산 생산액 2조가 감소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축산예산은 소폭 증가됐거나 삭감됐다.

미래는 현재의 영속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촌의 고령화는 또 어떤가. 65세 이상의 고령화율을 따지면 10년 후면 현재 농가 수는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후계자를 양성하고 싶어도 각종 제약이 많다. 규모화는 현재 ‘인근 주민들의 동의’라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강력한 규제에 오도가도 못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니 ‘미래산업’을 정부의 ‘희망산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풀이 죽어 가만히 있는 사람 뺨 때리고 미안하니까 ‘정신차리라 그랬다’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평을 받는 것이다. 미래산업은 그 산업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고 열정을 불살라야 가능한 일이다. 산업 밖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말의 성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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