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에겐 시즌이 끝나 아쉽지만 봄부터 내내 기다려온 코리안시리즈의 몇 일이 남아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특히 올해에는 재벌구단과 잡초구단의 대결로 압축돼 화제다.

찌질이들 또는 루저(패배자)들로 불리우며 이 구단 저 구단을 떠돌아 넥센이라는 한 자리에 모인 선수 하나하나가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면서 올해는 넘버원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재벌구단을 잡초들의 군단이 과연 막아설 수 있을까가 관전 포인트여서 더욱 즐겁다.

 

힘겨운 시간 떨치고

 

올해 200개의 안타를 넘기고, 3루타 최다 기록을 세우며 ‘서교수’라는 닉네임을 팬들로부터 얻은 넥센의 1번 서건창 선수는 ‘신고선수’ 출신이다. 그나마 1년 만에 방출된 후 육군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와 다시 넥센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군복무 기간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야구생각을 쉬지 않고 하면서 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의 성공스토리는 너무 잘 알려졌다.

3년 째 홈런왕 자리에서 꿈쩍 하지 않으며 올해는 특히 홈런 50개 클럽에 등재한 4번 박병호는, 성남고 시절 훈련하다 자꾸만 홈런을 쳐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학교에서 초대형 그물을 설치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고교생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었지만 LG입단 후엔 6년 동안 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긴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어디 이들 뿐인가. 윤석민·김민성·이성열 등을 포함한 대다수의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넥센으로 흘러들었다. 팀에서 버려진 선수들이 많은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야구팬들이 넥센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넥센은 메인 스폰서였던 우리담배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선수팔기’의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 살아남기 위해 이름 있는 선수들을 타 구단에 내줬다. 그러나 지금 넥센은 소위 그 ‘루저들’의 결집으로 프로야구의 판을 뒤집었다.

이 가을 잔치에는 넥센이라는 구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6개월 넘게 표류해 왔던 세월호 특별법도 있고, 축산인들의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을 통해 얻어낸 ‘여·야·정(정부)·단(축산단체) 4자협의회’도 있다.

 

결국 합의 이끌어 내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 속으로 침몰하는 동안, 300여 명의 학생과 일반인들이 ‘살려 달라’고,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동안,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르면서 TV로 그 전 과정을 지켜봤다. 우리 정부의 무능을,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사회상까지 모두 낱낱이 목도했다. 지금이라도, 나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도 갖게 됐다.

그러나 삐뚤어진 사회를 고쳐가겠다는 감정도, 모든 ‘적폐’를 일소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도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들의 무리한 요구’라는 이유로 대체되고, 핵심은 접어두고 사익을 위해 이용하는 부류들도 곁가지를 쳤다. 단식과 차가운 땅에서의 농성,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불경스러웠던가.

경제가 어렵다는 원인이 언제부턴지 세월호가 됐다. 하루속히 세월호법을 통과 시켜달라는 주장은 일상의 시위나 집회로 치부됐다. 유가족의 주장이 ‘떼쓰기’로 치부됐다. 그들의 신상이 털리고, 조롱받고, 음해 당했다. 오랜 시간 협상이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세월호특별법에 여야 그리고 유가족들이 합의했다.

지난달 23일 전국의 축산농가들은 여의도에서 가축반납 운동을 포함한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퇴로를 정하지 않은 채 무기한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단체장들은 10여일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뜻을 관철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굶어서 죽으나 생존권이 박탈돼 벼랑으로 몰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이다.

농축산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골든타임’을 역설하면서 ‘농축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FTA 비준동의안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희생되는 산업의 농축산인들에게 한마디의 위로도 없었다. 농축산부를 통한 ‘농업경쟁력 향상’이라는 말만 뒤풀이했다.

 

밟혀도 살아 남는다

 

4일 ‘여·야·정(정부)·단(축산단체) 4자협의회’ 구성이 합의됐다. 산자부·외통부·환경부까지 협의회에 참여하기로 했다니 목숨을 건 축산농가들의 결계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잡초들’의 승리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 전문이다. 풀은 연약해 보이지만 밟히고 밟혀도 끝내 살아남는다. 늦가을 더 늦기 전에 결코 지지 않는 잡초들의 잔치를 보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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