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박지르면 더 거짓말만…
윽박지르면 더 거짓말만…
  • 권민 기자
  • 승인 2014.10.24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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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2만여 축산농민들이 지난 23일 여의도에서 ‘FTA 근본대책 수립 촉구 및 영연방FTA 국회비준 반대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그동안 잇따른 FTA로 불안과 소득 감소에 따른 고통을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축산농민들은 현 정부를 「거짓말 정부」라고 했다. 농축산업의 희생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동의없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며 정부가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부칠 땐 그나마 희생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 있으려니 했지만 알고 보니 속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기존 대책 재탕·삼탕

 

투쟁선언문의 일부를 발췌해 보면 이렇다.

“우리 22만 축산농민들은 FTA와 관련 정부가 철저히 준비해 줄 것이라 믿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전하고 신선한 축산물을 공급하는 데 전념해 왔다…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은 기존 대책을 예산 수반 없이 재탕·삼탕하는 수준에 그쳐 우리는 생존권 박탈이라는 풍전등화 신세이다…이에 우리는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우리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한마디로 “살려 달라”는 애원이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죽이려고 하느냐”는 절규이다. “열 걸음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혹이다. 집회 이틀 전 ‘선포식’에서 FTA반대 축산인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위원은 “이번 집회는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단식도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한으로 잡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에게 공식라인을 통해 간담회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한 것도 한몫했다.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도 아니다. 무허가 축사의 양성화니 도축장 등 1차산업의 기반시설에 대한 전기료를 형평성 있게 적용해 달라는 주장은 속 깊이 파고 들면 타당성이 있지만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또 다시 ‘산업 이기주의’로 몰아 부칠 수도 있어 여기선 일단 접는다.

그러나 정책자금 지원금리를 한 번 따져 보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최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종전 2.25%에서 2%로 인하하는 등 시중금리가 크게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축산 정책자금의 금리는 여전히 3%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지원이라는 허울을 쓰고 어려운 축산농민들을 대상으로 이율을 따 먹겠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익 배분’은 상식

 

무역이득공유제의 도입은 또 어떤가. FTA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산업에서 ‘(가칭)축산업 특별기금’을 조성해 손실 입는 산업의 생존기반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나 일반 국민들에게도 설득력 있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만 아니라고 우긴다.

정부나 국회의원들이나 농축산인들만 보면 희생의 대가를 충분히 치러줄 것이라 약속한다. 내년도 축산예산을 보면 올 1조5325억원에서 1조5042억원으로 1.8% 삭감했다. 농림·수산·식품 예산 역시 전체 총 예산 5.7% 증액에 못 미치는 3%의 증액이다. 축산업 경쟁력 강화에는 44억원 증액됐지만, 정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지속 가능한 축산업 기반 구축은 3019억원에서 2692억원으로 500억 가까이 줄였다. 이는 무얼 의미하는가? 수치화된 의지를 말한다. 축산농민들이 무식해서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면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그러나 가슴이 아픈 것은 “살려 달라”고 전국에서 여의도로 몰려든 축산농민들의 절규가 그저 그런 ‘아우성’으로 치부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건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없는 현 정부의 냉혹함, 대통령의 입만 보고 움직이는 여당과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당리당략을 취하려는 수준 이하의 야당이 버무려진 국회로 인해 더욱 좌절할 축산농민들의 뒷모습 때문이다.

축산농민들은 FTA와 관련 새로운 협상이 진척될 때마다 표명한 정부의 각종 대책들이 새로울 것이 없어 당연히 실효성이 없는 ‘땜질식 처방’이고 ‘기존 예산 끼워 넣기식’일 뿐만 아니라 ‘허울 뿐인 개살구’요, ‘수박 겉핥기’라며 축산농민들이 무식하다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해한다.

 

정직을 가르쳐 주자

 

박근혜 대통령도 인수위 시절 “농축산업을 본인이 챙기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거짓말’이라고 총칭하면서 지금의 현 정부를 ‘거짓말 정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심리상담의 한 전문가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야단을 맞을까봐’라고 한다. 이때 부모들은 잘 듣고 다그치지 말고 부드럽게 왜 거짓말을 하게 됐는 지에 공감을 가져야 그 아이가 거짓말을 안 하게 된다고 한다.

또 정직이 무엇인지,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려줘야 스스로 행동을 돌아보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거짓말이 습관화돼 전반적인 도덕성 발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장관들도 외면한 요청이다. 들어줄 까닭도 없다. 사납게 몰아붙여 봐야 어기짱만 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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