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말 「안동발 FMD 파동」은 축산업에 일대 변화를 가져 왔다. 호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으로 번진 FMD는 정부가 집계한 직접적인 손실액만 3조원을 넘었고, 돼지·한육우 350만 마리가 매몰됐다. 이동 제한 등으로 관광·요식업 등의 경제사정은 가히 폭격을 맞은 형국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대동물들이 땅 속에 매몰되는 과정에 차출된 수의사·공무원·군 장병들의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후유증과 이를 지켜본 국민들의 충격 그리고 흘러나온 침출수로 인한 환경 문제는 축산업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안겨준 것이 더 컸다.

 

불신의혹 풀기 역부족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바뀌던 축산업의 패러다임이 한층 더 광역의 의미로 전환되면서 환경 위주로 바뀌게 된 계기이다. 더 이상 한우산업이 한우농가만이 아니고, 양돈산업이 양돈농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의 FMD로 판명됐다.

국내 축산물에 대해 애정을 가진 소비자들의 호감도 불쾌감의 수준을 넘어 축산인들에 대한 인식까지 불신으로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무항생제니 친환경이니 정부가 갖가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안동발 FMD 파동」으로 촉발된 거부감은 축산업 폄훼나 왜곡으로 이어지면서 축산업의 ‘지속 가능으로 가는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한 번 갖게 된 불신과 의혹을 풀기에는 현재 축산업의 환경으로는 역부족처럼 보인다. 농축산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없는 정부의 정책이 그렇고, 아직도 이전의 사육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농가들의 의식으로는 빠르게 변해가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게다가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성향이 반드시 동물애호가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현재 축산업의 위기이다.

최근 공장화된 도축장을 심지어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로 비유한 「동물 홀로코스트」가 출간됐다. 종교학과 홀로코스트를 연구한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찰스 패터슨은 인간의 우월의식에서 빚어지는 잔인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고기 먹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앞으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도축업은 가혹한 사업

 

책 내용에는 도살장에서 송아지들을 몰아넣고 도살총으로 난사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롱은 ‘어미와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작은 송아지가 우유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자신을 살해하는 도축자의 손가락을 빨다가 인간의 몰인정이라는 우유만 먹을 때 ’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차없고, 무자비하고, 갈수록 가혹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그 바로 다음 쪽에는 1942년 스몰렌스크 유대인 학살의 장면을 묘사한다. “엄마들은 대형 무덤으로 준비된 긴 구덩이까지 아기들을 안고 가야만 했다”고.

“식인풍속 만큼 혐오감을 갖지는 않겠지만 채식인들은 우리의 육식을 식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볼 것이다. 비록 우리의 아이는 아니지만 우리도 아기를 먹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는 동물 중 일부는 말 그대로 ‘아기들’이다. 젖먹이 아기 돼지는 도살당해 내장만 발라져 그대로 팔리는 데 그 무게는 9~16kg 가량 된다. 병 우유를 먹여 키우는 아기 양은 별미로 여겨지고 이런 아기 양은 단지 1~9주 정도에 도축된다. ‘밥(Bob)’ 또는 ‘바비(Bobby)’ ‘송아지고기(Veal)’라 불리는 가장 어린 식육용 송아지는 인간이 가장 빨리 요람에서 훔쳐내는 동물이다. 이 아기 송아지들은 태어난 지 하루나 닷새 안에 도축돼 인간의 입 속으로 사라진다”

2012년 출간된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 동물을 차별하고 고통을 주면 안되는 이유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면 「동물 홀로코스트」는 동물에 대한 차별과 억압 착취가 어떻게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쳐 왔는 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동물착취의 부당성을 피력하고 있어 더 호소력이 있다.

 

축산인식은 변하는데

“동물을 데려와 먹이를 주면서 인간은 우선 동물과 친구가 됐다. 그리고 나서 동물을 죽였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은 자기 내면의 어떤 감성을 죽여야 했다. 인간이 그렇게 동물의 생식을 조종하기 시작하자 잔인성과 죄책감, 그 이후 무감각으로 이어지는 관행들에 더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동물에 대한 지배가 인간 노예화, 특히 번식과 노동을 위해 여성을 착취하는 모형을 만든 것 같다”

동물 학대와 도살에 대한 의미를 사회학적으로 풀이해 가는 이 책은 도축업자를 나치에 비유할 정도로 강하게 비난한다. 거세에 대한 묘사는 끔찍 그 이상이다. “라프족은 순록을 잡아 놓고는 그 음낭을 천으로 싸서 이빨로 깨물어 씹어서 부서뜨린다”고.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부드러운 육질의 거세우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친환경을 왜 하느냐고? 축산업을 둘러싼 일반인들의 인식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책을 번역하면서 점점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모피코트가 생산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모피코트를 입지 않게 된 것처럼.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