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신문사 후배가 “다 때려치고 농사나 지을란다”며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훌쩍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취재 차 그곳을 찾았다가 그 후배 근황이 궁금해 만났다. 검게 그을린 살결. 가뜩이나 눈이 부리부리하고 각진 얼굴에 구릿빛이 더해지니 더욱 사나이 다운 모습이었다.

 

상여만 한달 세번

 

우렁찬 목소리에 사투리. “시골놈 다 됐네” 하니 껄껄 웃는다. 도시 직장생활에서의 찌든 모습이 아니어서 우선 좋았고, 딸만 셋인 그와 그 아내도 정말 행복해 보였다. 처음엔 도시에서 왔다고 배척하더니 한 달에 3번 정도 상여 맬 사람이 없어서 짊어지게 되니 자연스레 친해졌다고 한다. 마을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다 시피 하다 보니 이장이 따로 없더란다. 그는 처음엔 보험도 하고, 소도 한 두 마리 키우고, 농사도 지었다. 성격이 좋은 그의 아내는 일선농협에서 계약직으로 주부 교실을 맡았다.

그들은 농촌에 젊은이가 없다는 말만 들었지 정말 이렇게 적막강산인 줄은 와 보니 알겠더란다. 자신의 일을 제외하고도 할 일이 너무 많고, 갈수록 빈 집이 생기고, 어르신들이 어느 날부터 보이질 않으면 ‘아 또 떠나셨구나.’며 덜컥 가슴부터 쓸어내린단다. 젊은이들이 대부분 떠나고 나니 동네가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적막하다고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때가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농협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축산업의 경우 44.6%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10년 후가 되면 그 중 대부분이 이탈농으로 바뀔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되면 농촌에선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를 거의 보기 힘들어 진다.

정부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양축농가의 규모화를 추진해 왔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 듯 전세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현장의 실정에 맞지 않는 쥐꼬리만한 보상으로 영세농가들의 이탈을 부추기면서 추진한 축산정책 대부분이 대농·기업농에 맞춰져 있다. 규모화만 되면 무조건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라 믿고 있는 건지, 말마다 시설 현대화요, 친환경 축산이요, 무항생제를 부르짖는다.

 

수치적 오류 심각

 

이탈하는 농가수가 많아졌음에도 그것과 비례해 사육 마리수가 크게 줄지 않았으니 정부의 정책대로 전·기업화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분산된 영세농가들이 축산물 전면 개방 속에서 개별적으로 살아남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따라서 규모화돼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야 말로 농축산업을 수치적이고, 단편적으로 보는 심각한 오류이다.

이런 오류는 소비자들에겐 축산업을 오염산업으로 오인하게 하고, 농가에겐 이중삼중의 비용을, 국가적으로는 재자원을 ‘쓰레기’로 분류해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고, 그 많은 정부 정책의 실수를 농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았다.

경북의 한 조합장은 “향후 아무리 축산물의 가격이 좋다 한들 축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이익 폭은 좋을 리가 없다”면서 그 이유로 사료를 포함한 생산비 상승 등을 들고 있다. 규모화됐다고 사료원료 곡물 대다수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데 이러한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고령화에 따른 일선축협들의 조합원수 감소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농촌인구 1000만명 시대에 만들어진 ‘농협법 조합설립기준’의 조합원수로는 조합 존립이 위태롭기 때문에 이 규정을 조속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에서 내놓는 카드는 결국 조합 간 합병이었다면서 도대체 조합의 부피만 키워서 어떻게 할 생각인지 그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전국 141개 축협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정책을 내놓으면 잔소리가 많아서 귀찮으니 이 참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정리되도록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치열한 삶의 공간

 

후계자를 키우고 싶어도 말은 규모화라고 하지만 축사를 증축하거나 신축하려고 해도 적용되는 규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니 누가 축산을 대물림하려고 할까. 시설현대화자금 지원도 담보 능력이 부족하면 그림의 떡이고, 농어민후계자 자금이 저리라고 해 본 들 거치기간이 짧아 축산업을 해서 3년 동안 얼마나 수익을 낼 것인지도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도 규모화가 능사라고 할 수 있는 지 말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축산업에 뛰어들게 하려면 축산을 직업으로 할 때 마땅히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먼저 갖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지금 농촌은 전원(田園)도 아니고 정원(庭園)은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땅을 터전으로, 가축을 종자로 자연에 순응하거나, 재해를 이겨내면서 치열하게 삶을 유지하는 생활의 공간이다.

우리가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6차산업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은 농촌을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농업과 제조업 그리고 서비스업이 함께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농촌의 의미를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축산정책을 보면 6차산업에서 축산은 빠지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마치 잉어빵에 잉어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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