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조건
어른의 조건
  • 권민 기자
  • 승인 2014.08.2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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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지나가는 말도 그냥 넘겨지질 않고, 나를 보고 웃는 모습도 괜히 나를 비꼬는 것 같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 퇴근한 후 집에 와서도 괜히 짜증만 내니까 마누라고 자식이고 눈치만 보고 있더라. 회사에서 아님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만 그것조차 대답하기 짜증나.

 

웃으며 떠날 수 있길

 

몇 년 째 그렇게 지내고 나니까. 주변의 사람도 없고, 가정에서 조차 외톨이가 됐네. 내가 대체 왜 이러나 싶어서 술도 마시고, 놀러도 가 봤지만 마음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지. 오히려 속에 불만과 불안만 키워지더라고. 그러다 소꼽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속 맘을 털어놨어. 그 친구 눈빛이 반짝이더니 ‘너도 그러니?’하고 되묻더라. 그날 밤 집에 와서 가만히 그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곱씹어 봤어. 그리고 결론이 ‘아하!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현업에서 떠날 때인 것이구나’였어. 그러자 이해보다는 눈물이 나더라고.

부하직원들에게 밀려나는 듯한 느낌. 나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해 왔는 데, 저들은 내가 해 온 방식을 무시하고 다른 방식을 택한다는 노여움. 나는 저 나이에 많은 고생을 해 왔는 데 자식은 그걸 몰라주고 씀씀이가 헤픈 것. 많은 물질적 혜택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질투심. 평상시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침착된 감정들이란 걸 알게 됐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릴 땐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잖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멈춰졌으면 하게 되지. 내 마음을 좀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 겸허해지려고 노력하는 데 그게 잘 안되는 거야.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제사 깨닫게 되더라고.”

선배 한 분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날 그 분과의 대화는 가만히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먹는 나이는 사람의 감정을 크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의 말을 곱씹다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이가 떠날 때를 놓치고 지위의 단 맛에 집착함으로써 말년에 ‘망신’을 당하는 수많은 예도 이해가 간다. 그는 애착이라고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이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말이다. 어린애는 몰라서 쓰는 떼이고, 노인의 떼쓰기는 대부분이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이 값해야 ‘어른’

 

청소년 시기엔 그냥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워낙 ‘하지 말라·보고 듣지 말라’는 제약이 많아 오히려 호기심만 부추겨 일탈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호된 꾸지람과 심지어는 매질이 뒤따랐다. 그때는 나이만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스럽다는 것. 그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위 ‘나이 값’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과 경륜의 차이라고나 할까. 인생의 후배가 존경할만한 선배가 되는 것. 주변으로부터 본받고 싶은 행실을 하는 것.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어른의 모습’이었다. 4박5일의 일정 내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 이 땅에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과 평화·화해를 역설하면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울림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동한 것은 그가 교황이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서이다.

 

가슴에 단 리본 떼라니…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 동안 교황 뒤에 서서, 마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결과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괴한 모습이 부모가 대신 사과하고 그 뒤에 숨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면 너무 불경한 생각일까? 낮은 자의 편에서 슬픔과 고통을 함께해 온 교황이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 강론에서 성경 시편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젊은이들은 세상 속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그는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물질주의의 무한경쟁 사조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기 바라며, 생명이신 하나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은 남미 해방신학자들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무도 그를 두고 좌파니 공산주의니 사상의 색깔을 입히지 않는다. 그의 모든 것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누군가 세월호 유가족이 건네 준 ‘노란 리본’에 정치색을 입히고, 교황에게 “가슴에 단 그 리본을 떼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는 일화는 정말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교황의 방한은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다’는 속담처럼 조금만 배우고, 가지고, 누리면 마치 자신들이 사회지도층인 줄 아는 천박한 천민주의에 물들어 있는 이 사회에 어른의 조건을 보여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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