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가…
어쩌다 우리가…
  • 권민 기자
  • 승인 2014.08.14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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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하다. 밤은 깊어가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벌써 몇 일을 그렇게 보낸다. 아침이 되면 출근을 하고, 일을 하지만 몽롱하다. 불면증인지 아니면 우울증인지…우스개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한다 한들 입가로 번져질 리가 없다.

 

오히려 용서를 구해

 

한 달여를 집에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원 없이 울었다.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다. ‘어쩌다가…’만을 읊조리다 시간을 보냈다. 세월호에, 총기난사에, 또 윤일병 사건에…. 너무 가슴이 뭉쳐서 주먹으로 가슴을 쳐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다.

훈련이 끝나고 자대배치를 받은 윤일병이 구타로 숨질 때까지, 아니 이건 구타도 아니다. 고문이다. 내 가족을 죽인 일당 중 한 명에게 나머지를 불라고 인정사정없이 가한 고문이다. 아니다. 이건 놀이다. 바퀴벌레를 엄폐물 없는 넒은 공간에 풀어놓고 불로 지지고, 바늘로 찔러대다가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죽이는 놀이이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이 정상의 인간을 버러지만도 못하게 대한 ‘비정상’이다.

‘왜 한 번도 대들지 못했느냐?’고, ‘윤일병에게도 문제가 있었다’고, 일상의 상식이 통할 때의 이야기이다. 무차별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선 대부분 평소 가지고 있던 자존감은 쉽게 사라진다. 그것이 고립된 장소라면 더욱 그렇다. 나를 구해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자신의 무력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고, 되도록 그 폭력 앞에서 용서받고 싶어진다. 이유도 모르면서.

“한 밤 중 서 너명의 장정들에게 연행당해-말이 연행이지 납치와 다를 바 없었어요- 검은 짚차에 실려 끌려 들어간 곳이 몇 평의 어두운 골방이었습니다. 물건 던지 듯 묶인 몸을 바닥에 던지고 다 나가는 겁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어요. 이 사람들은 누군지, 나는 왜 여기에 와야 하는지, 여긴 또 어딘지. 끌려온 것을 가족들이 봤으니 어떻하던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봤습니다. 한 시간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보면 몇 가지의 도구만 보일 뿐 그것은 위협으로 느끼지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너무 조용하자 서서히 불안감이 몰려왔습니다.

 

말없이 몽둥이질 만

 

그 적막을 깨고 문이 열리면서 2~3명이 들어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매질을 가합니다. 비명소리 칠 시간도 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차별로 가해오는 폭력 앞에서 몸을 오그리고 어떻하던 피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몇 십분을 그렇게 때리고 불을 켭니다. 험상궂은 그들은 묶인 몸을 풀어주면서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합니다. 마음은 아니지만 몸은 벌써 반응합니다. 그때는 체면이고 자존감이고 수치심으로 치를 떨 상황도 되질 않습니다.

벌거벗겨진 몸에 가해지는 폭력은 자신의 상상을 훨씬 벗어나 몇 일째 이어집니다. ‘왜 때리느냐’ ‘이유라도 알아야 맞을 것 아니냐’ 애원해 봐도 돌아오는 건 매질입니다. 멍이 들고 상처난다고 스타킹 같은 것에 모래를 넣은 몽둥이가 닿는 몸은 피부가 아니라 뼈까지 충격파가 전해져 소리조차 지를 수 없을 아픔입니다. 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옵니다. 그때 쯤 되면 마음은 벌써 그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게다가 얼핏 그들끼리 ‘쟤를 어디다 버리지?’하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구원에 대한 희망도 촛불처럼 꺼져갑니다. 혼자 있게 되는 시간도 휴식이 아닙니다. 맞은 아픔의 후유증은 언제 저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때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몰됩니다.

‘너 거기 왜 갔어?’ 비로소 그들 중 한 명이 말을 겁니다. 한 마디라도 못 알아 들은 척 하면 날아오는 주먹과 몽둥이질 때문에 주절주절 아무 얘기나 합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난 후 난 다행히도 그곳을 나와 새벽녘 시장통 골목 쯤에 내려졌습니다. 그 때 그들 중 한 명이 만원인가 이만원인가 쥐어주면서 ‘해장국이나 먹고 가. 넌 운이 좋은 거야. 알지? 여기서 있던 일 아무한테나 하면 안된다는 걸.’ 난 거짓말처럼 고마워하면서 그 돈으로 해장국 집에 들어가 수저를 들면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이게 어디 국가인가

 

나를 불러낸 그 친구는 몇 잔의 술에 취해 그날 사고를 치고 말았다. 시끄럽다는 옆 테이블 사람들과 시비가 붙자마자 병을 깨 한 사람을 그어 버렸다. 분노가 증폭되면서 엄한 사람에게 분풀이 한 격이다. 그 시절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들은 지금의 시국을 ‘공안정국’이라고 하며 치를 떤다. 더 교묘해지고 다양해졌다고 한다.

세월호나 군 내 구타와 연관돼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를 들어 본 적도 없다. 이것들은 모두 국가의 폭력이다. 통합이니 화합이니 하는 것들은 밑에서부터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만 있으면 책임 전가하는 ‘적폐’가 진정한 원인이라도 내 통치기간에 일어난 일이니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 당사자들의 ‘용서’가 생기고, 화합을 이끌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농민이라고 천시 받고, 가진 것이 없다고 멸시당하며, 평범함이 비정상인 나라는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의무도 강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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