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센터를 통한 의료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공화국으로 훌쩍 떠난 딸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치안이 불안해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렸지만 가기 전 얼마나 안전한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그곳에서의 활동을 자세히 적어 준 그녀에게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했다.

 

자신이 더 부끄러워

 

축산생산자단체들이 벌이는 이웃사랑의 나눔운동과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현지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겪으며 봉사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많은 자원봉사자들. 마음으로는 존경한다면서도 몸으로는 결코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오히려 나이 어린 그녀가 일깨워줬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 그녀가 보내온 편지 내용은 아이티의 아이들과 선교센터의 일이었다. ‘헬로 아빠’로 시작된 그녀의 편지에는 아이티의 많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학대에 못견뎌 가정에서 도망나오고 있다고 적었다. 그런 아이들은 보통 길에서 생활하는 데 어리게는 6살 정도 되는 애들도 길에서 형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자신들끼리의 규율을 만들어 괴롭히고 싸우며 죽이고 죽기까지 한다고 한다. 또 이 아이들은 보통 길에서 차를 닦는 일을 주로 하는 데 이게 정말 위험한 일이란다.

“걸레 하나 들고 찻길에 서서 차가 설 때마다 뛰어가 차를 닦는 거야. 그 와중에 차가 움직이면 그 차를 따라가면서 닦는 일을 멈추지 않아. 여기서 버는 돈이 10센트 정도야. 아주 어린 아이들이 35℃에 가까운 땡볕에서 그런 일을 하는 모습을 매일 보는 데, 너무 안스러워서 가방에 물이랑 사탕 같은 걸 항상 넣고 다니면서 차 닦는 아이들에게 주곤 해.

이런 아이들을 모아서 선교사님이 학교를 시작했어. 그 이름이 「아가페 스쿨」이야. 처음엔 센터에서 아침과 점심을 주면서 수업만 했는 데, 한 두달 전 건물을 하나 구해서 기숙사처럼 애들이 잠도 자고 수업도 듣고 있어. 8살부터 22살까지 있어. 학교 갈 시기를 놓쳐서 일반학교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속성 수업을 거쳐 일반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선교사님의 목표야. 큰 애들은 직업훈련을 시켜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고.

 

사랑 알면서 풀려

 

험하게 살던 아이들이라 상처도 많고, 정해진 룰에 따라 사는 것이 익숙지 않았지만 매일 성경묵상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사랑이란 걸 주고 받으니 많이 부드러워져 이제는 눈빛이나 하는 행동이 일반 어린아이 같고, 배려가 몸에 배더라고.

우리 선교센터는 큰 NGO가 아니기 때문에 정기적이 후원이 없어. 그래서 예산이라는 걸 책정할 수가 없어. 그러다 보니 돈이 한 푼 들어오면 나가고, 한 푼 들어오면 나가는 식이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주기가 어려워. 언제 돈이 없어질지 모르고, 오늘 내일 밥값부터 해결을 해내야 하니 말야.

스폰서 식으로 각각의 아이를 후원자들과 연결해서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얼마씩 보내는 식으로 해도 될 것 같고, 아니면 농협같은 큰 단체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운영비를 보내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 같은 데 그지?

아니면 트럭같은 차량 도네이션이 있었음 좋겠어. 애들을 바닷가라도 한번 데려갈라치면 버스 대절하는데 돈이 너무 들거든. 단체로 이동하는데 차가 없으니까 너무 어려운 점이 많더라고. 지방에 있는 고아원이나 장애학교 같은 곳에 데려가서 애들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도 하게 할 건데… 차가 없네.”

무슨 도움을 줄 수 없을까 하고 언젠가 했던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엔 나눔축산운동도 이젠 좀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였고,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차원에서 아사위기에 처한 해외 결식아동들을 돕는 것이 어떻겠느냐 물을 때였다. 심장병 관련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떠났던 그녀는 이젠 「아가페 스쿨」봉사에 더 열성이라고 했다.

 

‘봉사는 배움’ 알아

 

“심장병센터나 수술 관련된 건 많은 병원들과 손 큰 후원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가페 스쿨은 아직 그런 관심을 못 받고 있거든.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바꾸고 희망을 주고 꿈을 갖게 해주는 것도 굉장히 큰 일이라고 생각해.

부모 없이 길에서 자라는 애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환경에 감사하게 된 건 너무 당연한 거라 말하기도 뭐하고, 그것보다 난 내가 이런 걸 보면서 돕고 싶다는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더 감사해. 아이티 같이 부족한 나라에 와서 이런 환경을 보고 내가 얼마나 이들보다 더 가진 게 많냐를 깨닫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지식과 가진 능력이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구나를 깨달으면서 더 겸손해지는 거 같아. 근데 열정이 있으니까 내가 앞으로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거 같아. 사랑하고 고마워요. 아빠”

누가 말한다. “여기서도 불쌍한 애들 많은 데…쩝”. 한국전쟁이 끝나고 우리도 많은 원조를 받았다. 이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이웃들을 돌아봐도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이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