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형 조합 주차장으로 관광버스 2대가 서서히 진입한다. 문이 열리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른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우르르 내린다. 그 중 몇몇의 얼굴은 벌겋다. 아마 약간의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들은 내리자 마자 곧바로 조합장실로 거칠게 올라간다. 직원들이 말리자 곧 몸싸움이 벌어진다. 몇 일 전 치러진 조합장 선거가 부정이라며 재선거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실은 새로운 조합장이 ‘무자격 조합원 정리’를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1층 신용점포를 찾은 일반인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면서 자신이 돈을 맡기는 이곳이 안전할까 싶어 잠시 고민한다.

 

조합원 아닌 조합원

 

벌써 몇 일 째이다. 그들과 인사를 하며 명함을 주고 받았다. 그 명함에는 00기자재업체 대표이사가 인쇄돼 있다. 직원에게 물었다. 조합과 무슨 관계냐고. 조합원이란다.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가축을 키우냐고. 이전에 키웠단다. 그럼 지금은 조합원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으니 정리가 안됐다고 한다. 무슨 조화일까. 궁금증이 더 커졌다.

대부분 도시형 조합의 조합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계획과 맞물려 토지 보상을 받고 축산을 접고 곧바로 지역을 떠났다. 축산을 계속하려는 조합원들은 도심에서 벗어나 주변으로 축사를 옮겼다. 도시화가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그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했고, 다시 그 주변으로 축사를 이전했다. 현재 도시형 조합의 조합원들은 그렇게 형성돼 있고, 일부는 축사를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하거나, 부업으로 이름만 올려 놓고 조합의 이익에 편승했다.

대도시형 조합은 매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항상 지적된 ‘신용 편중’에서 벗어나 협동조합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농촌형 조합과의 상생방안을 마련한다. 판매사업을 활성화해 농촌형 조합의 축산물까지 함께 팔아준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은 대부분 이들 무자격 조합원들의 반대에 밀려 좌초된다. ‘왜 수익도 나지 않는 사업을 하느냐’는 것이다. 조합도 ‘농축협 설립인가 및 존속요건인 조합원수 규정’ 때문에 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일부 조합장은 선거를 대비해 적극적으로 이들의 지위를 보장해 줬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조합간 갈등 야기도

 

도시형 조합의 변천사는 지역 조합과의 마찰을 지속적으로 야기시켜 왔다. 부족한 조합원 수를 채우기 위해 타 지역의 조합원들을 회유해 끌어 들이고, 신용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으로 지역 조합의 기틀을 흔들기도 한다.

지역조합들도 나름대로 고민이다. 농업 인구의 감소화 고령화로 조합원 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인 수는 10년 단위로 100만명 씩 줄어드는 추세이다. 또 1980년대 40대였던 연령이 2014년 현재 7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들의 폭발적인 은퇴는 조만간 조합의 존립을 흔들 것이 분명하다.

 

농가는 자꾸 주는데

 

최근 몇 년 간 ‘조합의 존립을 위한 조합원의 수’를 조정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농촌과 협동조합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대다수의 조합이 붕괴되거나 파행적으로 운영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농협법 시행령 제2조 ‘조합의 설립인가 기준’이란 뭔가? 1995년 제정된 이 기준은 시·군 등 지역농협은 1000명, 특·광역시와 일부 도서지역의 경우는 300명, 품목조합은 200명으로 정해졌다.

농업 전문가들은 향후 5년 후에는 농업인구가 200여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므로 기준을 환경변화에 맞게 ‘모두 200명’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당장 내년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 후 무자격 조합원들의 문제가 부정선거 등으로 확산돼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전국적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조합의 경영과 수익 배분에 있어서 진성 조합원들이 받게 되는 불이익이다. 조합이 무자격 조합원을 털어내려고 해도 그들을 대신할 인원이 없을 경우 조합 자체의 존립성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자격 조합원을 정리하려는 이유는 그래야 조합사업의 활성화와 그 결실을 진성조합원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존의 조합원 수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농축산업 모두가 빠르게 인원이 감소되고 규모·전업화가 이뤄지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고, 조합원 확보를 위한 조합간 갈등을 해소하는 한편 무자격 조합원 정리를 통해 조합의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협동조합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의 농업을 대변하고, 발전의 밑거름을 제공한 주춧돌이다. 특히 외국산 농축산물과 경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직임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실핏줄 역할을 해 온 것은 지역의 조합들이다. 이제 그 역할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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