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즌이다. 4년마다 이맘 때만 되면 지구촌은 공 하나에 울고 웃는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도 아닌 나라에서 조차 월드컵 시청을 위해 휴교령이 내린다. 흥분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부지기수다.

무게 3.8kg의 금도금 트로피인 피파컵(공식명칭, 중흥기를 이끌었던 3대 회장 줄 리메 이름을 따서 「줄 리메 컵」이라고도 한다)을 들어 올리는 일이 무슨 대수인데 전 세계 지구촌을 달구는 것일까.

 

어른스러워진 응원

 

전국민 전국토를 붉은 물결로 수놓았던 2002년 한일월드컵의 추억을 되새기며 올해도 어김없이 응원물결이 넘실거린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월호 참사로 조심스럽고, 어른스러워졌다고 할까. 함께 모여서 즐긴 후에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1000만 서명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월드컵 하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선수가 있다. 코트디부아르(영어명으로는 아이보리 코스트)공화국의 「디디에 드록바」다. 커피와 코코아 생산량이 세계 1위인 코트디부아르는 한때 ‘서아프리카의 모범국’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경제가 안정됐던 나라였다. 그러나 60여개 종족 간의 갈등으로 분열돼 빈민국으로 전락했다. 드록바는 그 나라 빈민계층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축구공도 없이 축구가 좋아 흙바닥을 뛰어 다녔다.

2004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주전 공격수로 입단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그는 바램이 있었다. 코트디부아르 남부를 점령한 정부군과 북부를 점령한 반군의 내전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70여 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고향, 비극에 빠진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해 최종 예선을 통과, 조국을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그는 소감을 묻는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조국에 눈물로 호소했다.

 

눈물로 ‘휴전’ 호소

 

“아이보리 코스트 국민 여러분! 북부·남부·중부·서부의 주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조국의 국민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보리 코스트인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음도 보여줬습니다. 또 공동의 목표를 두고 함께 뛸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월드컵에 가자’는 목표 말입니다. 우린 이 축제가 사람들을 뭉치게 할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무릎 꿇고 부탁드립니다. 서로 용서하세요….용서하세요! 국민 여러분 단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

그의 호소는 거짓말처럼 전쟁을 멈췄다. 그리고 1년 뒤 정부와 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5년 간 지속된 내전이 전면 종결된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드록바는 자신의 사비로 코트디부아르에 60억원 짜리 병원을 세우고 3000여명 이상 자국민들에게 무상 의료검진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의 스폰서인 나이키를 설득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고등 교육과 에이즈 예방을 지원했다. 또한 자신이 속해 있는 첼시의 구단주 아브라모비치를 설득해 유소년 축구시설도 건립 했다.

그가 현재 유럽의 빅클럽을 마다하고 터키, 중국 등에서 뛰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 병원을 지을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다. 한 명의 축구선수지만 세상을 바꾼 남자 그가 바로 드록바 일명 드록신으로 불리우는 이유이다.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1차전 일본과의 대전에서 한 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16분 전까지 그는 코트디부아르 벤치에 앉아 있었다. 37살 축구선수론 전성기를 지난 나이 탓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감독은 ‘드록바의 카드’를 쓰지 않고 이기기를 바랬으리라.

 

교체카드는 그런 것

 

하지만 코트디부아르는 지고 있었고, 일본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드록바는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늙은 사자가 어슬렁 거리듯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리고 몇 분만에 모든 것이 역전됐다. 그는 교체카드였지만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가 감춰둔 필승의 카드였던 것이다. 그가 나오자 꺼져가던 다른 선수들의 에너지가 급상승했다. 털레털레 힘없던 움직임이 날렵해졌다. 60분 이상의 경기를 지배했던 일본은 드록바 한 명에게 완패했다. 교체 카드는 그렇게 쓰는 것이다.

우리 청와대는 지금 세월호 이후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국무총리를 비롯 다수의 장관 물갈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동력에 힘을 실어야 할 교체카드가 동력에 오히려 물을 뿌린다. 필승의 카드가 아니라 진짜 후보를 썼기 때문이다. 우리의 드록바는 진정 없는 걸까. 아니면 ‘코드 타령’으로 찾고 싶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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