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이 사회의 ‘민낯’으로 국민들은 지금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뭐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가 여지껏 어렴풋하게 나마 알던 일들이 확인됐을 뿐이고, 알면서도 남의 일인 양 슬쩍 넘어갔던 우리들 행태의 결과에 스스로 놀랐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정치인들의 세계와 대다수 국민들의 세계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 세’라는 것. 부정과 부조리와 불합리에 부패와 불법·탈법을 판치게 놓아둔 죄 때문에 우리는 미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희생이 당연?

 

정부 정책의 대부분이 ‘이익의 소수 집중’을 위해 실행되고, 그것을 위해 다수의 국민이 희생을 강요당하면서 명분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 국가 지상주의이다. 어느 시절의 산물인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서로 먹고 살기 힘들어 어떻게든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지향의 정책을 쓰면서 허리띠를 졸라 맸다. 국가의 발전이 바로 개인의 발전이라고 믿으며….

그 과정에서 싹 튼 부조리가 시스템화됐고, 무개념이 상식화됐다. 권력의 주변에서 끝없이 그것을 좇는 해바라기의 무리들이 득세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말은 전체의 이익이라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들만의 잔치’였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배 고프다는 이유로 무관심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희생되지 않는 것에 안도하면서 내 자식들은 신분이 상승돼 그들 부류에 끼기를 원했다. 그것이 지금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이다.

「세월호 참사」가 3주를 지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 라는 말이 나온다.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 소유주가 유병언 씨 일가라며 이제 관심은 그곳으로 쏠린다. 언론에선 또 사냥에 나섰다. ‘구원파’니 오대양 사건이니 들춰 가면서 여론의 관심을 세월호에서 유병언 씨 일가로 옮기려 노력 중이다.

 

핵심 희석하려 혈안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시스템화된 거대한 부조리이다. 차가운 바닷 속에 수장됐거나 실종된 아이들의 억울한 주검 앞에서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고개 조아린 우리들의 행위는 정말 미안한 태도가 아니다. 무기력에, 부도덕에, 부패에, 탈법과 정경 유착에 분노하지 않는 우리는 미안한 것이 아니다.

분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기물을 때려 부수고, 사람을 때리고, 책임자를 엄벌하라고 밖으로 뛰쳐 나가 무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잘못된 일을 바로 잡자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이다. ‘미안하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미안하지만 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기억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적극적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분노는 행동이 동반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성격을 파탄시킨다.

우리는 왜 분노하지 못하는 가. 감성적인 것조차 우리 스스로 의식화된 이분법의 논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로 분노는 정연한 질서를 깨 혼돈을 야기시키는 아주 나쁜 감정이라고 배웠다. 차분하라고 아홉 번의 아홉을 참으라고 말이다.

감정이 어떻게 수치화되고 계량화될 수 있는 지 물어야 한다. 사우나의 온수에 들어가는 사람도 사람마다 뜨겁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데 말이다. 분노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부정은 더 강한 긍정이란 뜻이다. 감정의 다의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세월호의 참사를 보면서 너무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이 울었다. 슬픔은 눈물을 동반하고 눈물은 감정을 치유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분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 미안해 할 이유도 없다. 죽은 자의 넋이 달라지지 않는다. 정녕 그것이 미안하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래도 분노해야

 

국무회의에서 자신이 선택한 이들 앞에서, 회의실 한 켠에서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국정을 돌본 지 1년이 넘었다. 아직도 ‘적폐’라고 해 본들 국민들 누가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믿을까.

현장에서 컵라면을 허겁지겁 입 안으로 쑤셔 넣고, 장례식장에서 조차 권위를 내세우던 장관이나, 세월호의 참사를 두고 ‘이 슬픔과 참담함을 보다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자’던 국회의원이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촛불시위를 벌인 또래의 고교생들이 ‘6만원의 일당 아르바이트’라고 했던 저들은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분노하라면 누군가 말한다. 도발하지 말라고. 또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희석한다. 그래도 분노하고 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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