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20여 년 째 한우를 키우고 있는 A씨는 여러 종류의 가축을 키우다 주변의 권유로 모두 내다 팔고 한우 한 축종에 몰입했다. IMF가 터져 생활이 어려운 영세농가들이 내다 파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빚을 내서 구입했다. 조금만 버티면 그것이 많은 이익을 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한꺼번에 물거품

 

어떤 땐 구입한 어미 소가 임신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땐 횡재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면서 400여 마리로 불어났고, 소 값이 다시 정상화되고 더 올랐다. 그동안 두 명의 자녀들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다녔다. 자금의 여유가 생기자 당시 유학 바람이 그 집에도 불었다. 애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2008년 국제 곡물값이 폭등하면서 갑자기 사료 값이 덩달아 올랐다. 다시 축산업계에 찬바람이 불었다. A씨는 또 소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의 바램대로 돈을 벌었다. 2010년 11월 안동에서 그동안 잠잠했던 FMD가 발생했다. 그는 이전처럼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잠잠할줄 알았다. 그날의 광풍은 A씨의 농장을 휩쓸었고, 그때까지 20여 년의 노력은 한꺼번에 물거품이 됐다.

한우 우수목장으로 선정됐던 상주에서 100여 마리의 한우를 사육하던 B씨와 농장 탐방을 위해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그날 저녁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안동에서 FMD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 B씨에게 전화했다. “아무래도 약속 날짜를 미루거나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다”고. B씨는 “낼 모래 약속을 못 지키면 10일 이후에나 봐야 할 것이다”고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동남아로의 해외여행 일정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개념없긴 마찬가지

 

A씨는 축산업의 상황이 어려울 때 마리수를 늘리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20여년 간 몸소 체득해 온 경험에서이다. 우사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기자재업을 병행하면서 수km 떨어진 집에서 우사를 관리해 오던 B씨도 질병에 대한 개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우는 악성가축질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닥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돼지를 키우는 양돈농가나 오리를 키우던 오리농가도 경우는 조금씩 달라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방역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 모른다. 또 생석회만 뿌려놓고, 출입차량과 출입자에게 방명록에 기록만 하라면 끝인 줄 안다. 기록은 행여 확산될 소지가 생기면 그것을 찾아서 사전에 차단하는 목적이다. 악성 질병이 왔을 땐 이미 늦었다. 내 모든 재산을 소각해야 한다. 보상도 100%가 없다. 발생 원인을 따져서 자신이 방역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면 부분별로 적용해 깎아 나가기 때문이다.

질병이란 소리도 없고, 색깔도 없다. 또 자신이 주의깊게 가축의 행동이나 축사의 분위기를 살피지 않고는 조짐을 찾지 못한다. 아무리 CCTV를 설치하는 등 축사 현대화를 꾀한다고 해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는 악성가축질병의 습격을 막을 수 없다.

 

각종 질병이 만연

 

AI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FMD는 북한 접경지역까지 남하했지만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PED(돼지유행성설사병)의 확산은 3종 전염병이어서 인지 양돈농가들만 전전긍긍이다. PRRS(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는 타 질병과 연계되면서 복합질병으로 이젠 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매년 줄어들고 있던 소 브루셀라병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2012년 80마리에서 지난해 25마리 발병했던 이 병은 올해 안성과 평택지역 농가 9곳에서 벌써 106마리나 감염돼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가 주의를 당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개상이 브루셀라병 검사를 받지 않은 소를 농가에 팔았고, 농가 역시 검사 증명서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12년 축산물 생산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생산비 중 농가의 방역치료비 비중은 한우 비육우의 경우 0.5%, 육우는 0.8%, 비육돈은 2.7%, 산란계는 1.1%, 육계는 2.2%에 불과하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악성가축질병의 파괴력을 생각하면 너무 안일하다.

질병은 매번 발생하진 않는다. 소독은 농협에 맡기고, 소독약은 정부가 알아서 대주어야 하고, 자신은 잠시 공방단에 참여해 잠깐 농장 소독하는 시늉만 내는 것은 내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맡기는 꼴이다. 몇 십만원 어치의 술 한잔 안 마셔도 좀더 나은 예방을 할 수도 있고, 한 번 더 축사를 둘러보는 자세로도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다. 발생한 후 정부를 비난하고, ‘방역에 소홀했다’고 주변의 농가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내 재산은 누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쏟아진 물은 되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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