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난다. 가슴이 퍽퍽하다.

300에 가까운 피지도 못한 꽃잎들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살려 달라’고,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누군가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유언하고, 누군가는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부모를 안심시키는 대견함을 가지고 있는 너희들을 생각할수록 고여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한다.

갑자기 닥친 위기를 판단하지 못한 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면서 정작 침몰 순간엔 제일 먼저 배를 버린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 대한 분노에 울분이 차오른다. 긴급 구조도 그들이 아닌 탑승한 학생이 전화했던 아버지가 오전 8시50분 목포해양경찰청에 구조요청을 하면서 진행됐다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인가 말이다.

 

일말의 책임감 없어

 

해양사고 매뉴얼에 따르면 선장은 선박사고 시 승객을 격리하고, 피해자 확인과 육해상 비상망을 통해 구조 및 지원요청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월호는 최초 신고 1시간 전부터 사고해역에 서 있었다는 목격담은 더욱 아프다. 백번 양보해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일찍 신고만 했더라면 그 많은 아이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진 않았으리라고….

선장을 비롯 1등 항해사·갑판장·조타수·기관장 등 30여명의 직원들은 침몰 때까지 안내방송을 맡았다. 22살의 여승무원 박지영 씨를 빼곤 대부분 구조됐다. 2012년 대학 1학년 재학 중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박지영 씨는 휴학계를 내고 승무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늘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그녀는 그날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 매점 문이 바다 쪽으로 향해 열리자 승객들이 그 틈으로 빠질까 봐, 문을 닫고 문고리를 채운 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 도왔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한 승객은 머리를 다쳐 피가 났는 데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주면서 ‘침착하라’고 차분히 말했다고 전했다. 병원에 도착한 후 그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그도 울먹였다.

 

동료학생과 교사뿐

 

그 무서움과 다급함 앞에서 정작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것은 동료 학생들과 교사들이었다. 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들게 하거나, 메신저를 주고 받으면서 두려움을 서로 달랬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겨 탈출했고, 몸으로 밑에서 받쳐주면서 헬기의 밧줄을 잡게 하고 한 명 한 명 그곳을 벗어났다.

아비규환에서 살아온 학생들은 병원에서 친구의 사망과 실종을 접하면서 오열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에서의 추억만들기로 재잘거렸던 친구가 다시는 말 조차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시의 악몽 때문에 눈물부터 나왔다. 너무 무섭거나 아프면 말이 나오지 않고 움직일 수 없다. 그저 눈물만이 말해줄 뿐이다.

갑자기 바닥이 일어서고, 온갖 집기들이 흘러내리는 동안 그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방송을 통해 ‘가만 있으라’는 말만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차가운 바닷물이 밀어 닥치고 정전이 뒤따르면서 당황은 두려움으로 변했으리라.

어둠 속에서 집기들에 부딪치고, 차가운 바닷물은 목으로 차오르고 순간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곁에 서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가운데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으며 울고 또 울었을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이 참담한 현실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도 함께 울었다. 까치발을 해 가며 잡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기물에 매달리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얼마나 두려웠을까.

 

부실과 부도덕 판쳐

 

정치인들이 병원으로 몰려가고 국무총리가 납신다. 부모와 아이가, 살아남은 아이가 세상을 뜬 친구를 생각하면서 서로 말을 삼가며 참고 참았던 그 아픔의 시간들은 그들의 설레발로 여지없이 깨진다. 많은 젊은 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간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가 엊그제다. 또 얼마나 이 같은 참담함을 당해야 할까.

인명구조가 끝나기 무섭게 사고 원인과 배를 버리고 먼저 도망친 선장에 대한 처벌이 잇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 중에는 반드시 부실과 부도덕이 도사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십중팔구는 ‘돈’ 때문이다. 어른들이 하는 행동이란 것이 어느 것 하나 본받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너희들의 불행이다. 싸우고 헐뜯고 비방하는 꼴사나운 짓거리를 해대고 있는 동안 너희들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부디 명목을 빈다. 그럴 수 없겠지만 비록 우리들의 희망일지라도 그 날의 아픔을 잊고 편히 쉬거라.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을 결코 용서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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