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되요. 농협에 물어보세요.”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할 겁니까?” “지금 상황을 보고도 모르세요? 일이 손에 잡힙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어떻게 계획합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00년 농협과 축협이 통합되고 축산경제부문의 직원들과 한 대화이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직원들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랬기에 취재하기 힘들었고, 퉁명스러운 그들의 말투도 감내했으며, 어떻게 하면 축산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요? 나 스스로도 축산경제 직원이라는 사실이 창피한 일이어서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일입니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축협중앙회가 통합된 지 14년이 지난 20143월 초의 일이다.

 

내용은 천양지차

 

왜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냐고 묻는다.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999년부터 정부의 통합 방침에 반대해 직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히 저항했다. 머리를 깎고, 전국 순회 반대투쟁도 했다. 일선축협들도 너나할 것 없이 합세했다. 축산경제가 국내 축산업을 주도하면서 그 역할이 중요했음을 인지해서 더욱 그랬다.

농림부를 주축으로 생산자단체들은 그러한 몸부림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했다. 축협중앙회와 일선축협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통합이 싫다고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옷을 벗고 떠났고, 또 누군가는 통합 후 떠났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살생부가 떠돌고 있다며 떨었다. 떠난 사람 중에는 그래도 남아 있는 자들이 축협중앙회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지금까지의 축협인들이 해 왔던대로 축산업 미래의 등불을 밝혀주길 바랬다.

 

정체성 보존 희망

 

대표가 세 번째 바뀌었다. 매번 바뀔 때마다 순조롭게 끝나지 않았다. 옷을 벗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좀 더 달콤한 권한을 누려 보려는 욕심에서 비롯됐다. 특례조항이라는 농협법 132조가 그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산경제가 농협법 내에 특례조항을 갖게 된 것은 끈질긴 통합 반대의 투쟁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잊혀졌다.

반대 투쟁으로 많은 직원들이 떠나갔다. 그와 반대로 그렇게 얻어진 결과물로 또 많은 이들이 이득을 얻었다. 통합 직전 살아남은 직원들은 농협중앙회 본부와 일선 현장에서 많은 굴욕과 차별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끼리 뭉치려고 노력했고, 알게 모르게 농협 쪽과 경쟁했다. ‘우리가 너희보다 못나지 않았다. 농협 내로 이동된 직원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꿈틀댔고,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렇게 14년을 농협에서 지냈다.

그러는 동안 집행간부들은 특례조항의 덕을 보면서 많은 권한을 누렸다. 일선축협 조합장들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농협 내에서 독자성을 누리고 또 누렸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자신의 위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혼돈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14년이 지난 지금 축산경제의 현실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독선과 편가르기가 만연되자 줄 대는 직원들도 늘어났다. 지연과 학연으로 인맥이 형성되고, 상황 인식을 조언하는 직원들을 배제하는 오만함도 커졌다. 나의 티끌은 보이지 않고 남의 허물이 보이고,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깊어갔다.

노조와 제 잘못을 따지며 싸우고, 거기서 빚어진 일로 소송을 벌이는 이전투구 양상도 심화됐다. 그동안 공()을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불어 농협경제와 다시금 대립의 각을 세우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불출마를 선언하고도 많은 잡음을 남겼다. 모든 인사를 차기 대표와 연계성 없이 전격적으로 해 버렸다. 그것을 두고 재를 뿌렸다고들 말한다.

 

갈등의 골 깊어져

 

인사는 했지만 인사가 아니게 됐다는 말은 차기 대표가 취임한 이후 또 다시 인사·이동이 있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1분기를 넘기면서 직원들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축산경제가 국내 축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 몰라서가 아니다. 일을 해야 하는 데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의 조합장들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지금 직원들의 모습에서 축산업 불모의 땅에서 축산을 온전한 산업으로, 농업 생산액 중 축산물의 비중이 10위 안에 모두 자리매김했다는 자부심을 볼 수가 없다. 그동안의 모든 공적이 허연 밀가루를 뒤집어 썼다. 현재 축산경제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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