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눈이 쏟아진다.

몇 주 전 숨죽여 놓았던 상념이 터져 나와 견딜 수 없는 혼란스러움으로 술 잔을 기울이고, 글이라고 끄적거려 보기도 하고,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생각키워지지 않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괴로워하다 겨우 잠재워 놨다.

그러다 몇 일 전 카톡을 열어봤다가 상처가 다시 터졌다. ‘편히 쉬겠습니다얼마 전 세상을 뜬 벗의 글 한 소절. 터질 상처는 터져야 하는 모양이다.

그와 의기투합했던 것은 세월을 핑계삼은 자신을 탓하면서 술 한 잔에도 거지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던 주의론자(主義論者)여서였는지, ‘우리만은 그래도 고민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설익은 철학에 대한 맹신론자(盲信論者)여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상념은 칼날이 된다.

 

아픔 대신 못한다고

 

그러다 불현듯 우리의 투합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투정이었는지 모른다는 데 이르자 화들짝 상념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을 무시하고 살 자신도, 그렇다고 사랑하며 살 자신도 없기에 우리가 서로에게 여지껏 말 못했던 그 상념의 찌꺼기들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메일을 주고 받다가 죽기 몇 주 전부터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 것은 그 사실을 서로 충분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나의 아픔이 클지라도 그 어느 누가 그것을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아픔이란 나에게 머무를 때만 순수함을 간직할 뿐 타인에게 이전되면서부터는 변질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 상처가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나의 밖으로 나오면 그때부터 내 것일 수 없는 까닭이다.

 

불행한 동거가 일상

 

왜 고통스럽게 사느냐면서 어리석음을 탓하지만 그건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습성이다. 마찬가지로 왜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 사냐고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랴 나와 같은 사람과 동거하는 행복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불행한 동거가 일상인 것을.

부모님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기댈 마지막 언덕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로 인해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자식의 죽음은 희로애락의 세상을 알기도 전에 가버림에 대한 애석함이다. 나보다 먼저 간다는 것에서 애간장을 녹이는 슬픔이지만 마음에 두고 두고 담고 가는 애통이다.

벗의 죽음은 나의 삶에 대한 돌직구이다. 창고 한 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 놓았던 죽음이라는 상념이 비로소 내 앞에 서서 권리를 주장한다.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

최근 교보생명과 노인전문기업 시니어파트너즈가 20~60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대한민국 시니어리포트 2014를 발표했다. 젊은 층에 비해 나이가 많을수록 더 늦게까지 일하려고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정년이 다가올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늙은 추악(?)’이 보편화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사람과 사람은 항상 자극을 주면서 삶을 영위한다. 끊임없이 주고 받는 영향 때문에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거늘. 오랫동안 존경해 왔던 사람이 자리에 연연하며 많은 실책을 범하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내가 보낸 존경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도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도 그렇고 미움도 원망도 나 자신의 입장에서 시작되며, 그 해결방안도 나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순해져야 하는 성격이 오히려 사나워지는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어느 법사가 그랬던가, 아니면 교수가 그랬던가. 모든 욕심와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야 말로 편안한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적정한 시기,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그 말이 요즘 들어 참 진리라고 생각한다. 정말 지키기 힘든.

 

존경한 만큼 아프다

 

세월의 흐름에 저항해 본 들 이길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닫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할지, 왜 우리는 그렇게 떠밀려나갔던 선인들의 아픔을 곱씹고 또 곱씹게 되는 걸까.

존경했던 만큼 그런 입장에 처하면 너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하고 가슴앓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가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픔을 변명하고 핑계삼는 것은 결코 평온한 삶이 아니다. 창가에서 눈을 관조하다가 밖으로 나와 눈을 맞는다.

그리고 말없이 떠나간 벗을 위해, 남겨져 모진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나를 위해, 또 어딘가 상황에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대들이 있어 나 사는 동안 즐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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