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적(敵)’ 막느라 심신이 괴롭다

주요 가축전염병의 조기근절과 질병발생 시 신속한 초동대응을 통해 가축전염병의 피해로부터 축산 농가를 보호하며, 나아가 국가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축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숨은 일꾼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방역사다.

양축현장의 이상 축을 조기 색출해 신속한 초동방역으로 질병의 확산을 차단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최근 방역당국과 양축농가를 긴장케 하고 있는 고병원성 AI 발생 시에도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최초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이 후 24일 충남·전남, 27일 충북, 28일 경기권 까지 확산되면서 전국적 발생 양상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남의 경우 단 한건의 의심축 신고도 전해지지 않았다.

128일 오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남도본부 소속 이미숙 전화예찰요원은 AI 집중 예찰 기간임에 따라 담당 지역인 밀양시 가금 농가를 대상으로 전화예찰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밀양시 초동면 소재 한 토종닭 농가에서 30마리 가량 폐사축이 발생했다는 축주의 답변을 듣게 됐고 경남축산진흥연구소 중부지소에 이를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급파된 경남축산진흥연구소 방역담당 공무원은 현장에서 AI 간이키트로 검사한 결과 음성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어 해당 농장의 시료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병성감점을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사전 조치로 경상남도 축산과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 초동방역팀 투입을 요청했다.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됐다. 129일 새벽 12시 경남도 축산과로부터 초동방역팀 투입 요청이 들어오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경남도본부 중부사무소 소속 김용찬·오현탁 방역사로 구성된 초동방역팀은 곧바로 해당 농장으로 투입됐다.

새벽 1, 해당 농장에 도착한 초동방역팀은 매뉴얼에 따라 농장입구에 의사환축 발생사실과 출입금지를 표시한 표지판을 설치했다.

이어 해당 농장의 진입로에 통제초소를 설치하는 한편 생석회를 살포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용찬 방역사는 상황이 긴박했다. 어둠과 추위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수차례의 초동방역팀 출동 경험이 있었기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초동방역 조치를 취한 방역사들은 추운 혹한의 날씨와 마주하며 뜬눈으로 경계 임무에 임했다.

29일 오전,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신고 사실이 알려지자 취재를 위해 10여개의 방송매체들이 농장 입구로 몰려왔다.

방송매체들은 농장 진입을 요청하거나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방역사들은 농장으로의 진입이 가능한 샛길 전부에 방역띠를 둘러 차량이나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해당 농장주는 물론 동거가족 및 고용된 자, 가축·사료·분뇨 등을 운반하는 차량에 대한 출입이 제한됐다.

30일 해당 농장의 의사환축 시료의 정밀검사 결과 고병원성 AI(H5N8)로 판명났고, 오후 3시부터 해당 농장 가금류의 살처분이 시행, 늦은 밤인 10시에 완료됐다.

매뉴얼에 따르면 의사환축 발생농장의 정밀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날 경우 기동방역기구 투입이 종료되면 초동방역팀은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해당 농장은 분변 및 잔존물 미처리로 초동방역팀을 유지키로 해 방역사들은 사후처리가 완료된 28일까지 초동방역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129일부터 28일까지 10일여 동안 현장에 머무른 것이다.

역학조사 결과 해당 농장에서 최초 의사환축 신고 이전 21일 이내에 20km 떨어진 가금농가에 토종닭 100마리가 분양됐지만 발 빠른 대처로 예방적 살처분이 시행돼 현재까지 경남에서는 더 이상 의사환축 신고가 접수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설 명절에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현장을 사수해야 했다. 처음에는 농장주와 다툼도 있었지만 설 명절마저 반납한 채 초동방역 임무를 수행하는 방역사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농장주가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단다.

이들 방역사들에 따르면 10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컵라면과 빵, 우유 등으로 식사를 때웠다. 또한 낮에는 대소변을 보기가 민망해 밤이 돼서야 근처 풀숲에다 해결해야 했다. 마련된 간이 텐트에서 잠을 청해보려 해도 조그만 소리에도 잠을 깨 한 시간 이상을 잘 수가 없었다. 한겨울의 맹추위 또한 방역사들을 힘들게 했다.

방역사들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컸다고 했다. 오현탁 방역사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나 하나의 실수로 방역에 구멍이 생겨버리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잠이 미친 듯이 밀려와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군 시절 초소근무보다 몇 배는 더한 긴장감으로 초동방역 임무에 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초동방역팀 투입 경험이 많은 김용찬 방역사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했다. 명절 연휴 기간 동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컸다. 특히 3살배기 딸이 눈에 밟혀 힘들었단다.

김용찬 방역사는 지금까지 투입됐던 초동방역 업무 중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며 극복해 냈다면서 초동방역팀 철수 당시 농장주가 고마움을 전하고 차후에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후처리가 완료된 28일 오전 1140, 해당 농장에서 철수 후 방역사들은 매뉴얼에 따라 바로 인근 목욕탕에서 목욕을 실시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또한 10일 만에 가족들을 만나 웃음꽃을 피웠다.

이들은 관련 규정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감수성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 및 축산관련시설의 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내근 위주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전북 고창에서 최초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신고가 들어온 116일부터 29일 현재까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초동방역팀이 투입된 농장은 91, 방역사 540(연인원)이 현장에서 이 같은 초동방역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 고병원성 AI는 철새가 원인이 돼 가금농장 발생과 확산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방역당국과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농가와 농가 간 수평적 확산은 숨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번 AI 사태로 피해를 입고 있는 1순위는 분명 가금사육농가다. 이에 정부도 가금사육농가의 애환을 덜어주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에는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방역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장의 방역사들을 만나면서 국가방역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에 대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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