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은 유기체…전진하지 못하면 죽는다

경북 지역에서 조합 책임 직원들이 찾아 온 적이 있었다. 2000년 당시 합병대상 조합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장 빨리 정상화된 조합을 방문해 어떻게 극복했는 지 그 과정을 벤치마킹한다는 의도였다.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조합장의 역할로 귀결되더라

포커스 인물 취재를 위해 만난 김병수 보성축협 조합장은 할 말도 없고, 한 일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다 마지못해 툭 던진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진보(進步)선장(船將) 또는 조합장론이다.

과거지사는 과거의 일로 돌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과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는 힘은 배 안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표로 뭉쳤을 때 가능한 데 이를 이끌어 내는 열쇠는 선장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확신에서 그렇다.

김병수 조합장은 과거의 행태와 잘못은 지나간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그 일이 잘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만이 조합을 합리적으로 경영하는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었다. 어느 시대의 노무현 대통령인 데 아직도 그 이름을 팔면서 현실의 책임을 떠 넘기고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회사든 조합이든 경영체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썩기 시작하며, 한 번 썩으면 도려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조합장의 자세말은 쉽다. 농촌과 농민을 위한 마음? 실천하려고 하면 너무 어려운 것이다. 처음의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일 그만 두더라도 오늘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김병수 조합장은 20002월 조합장에 취임했다. 그는 당선 소감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보성축협 조합원 그리고 지역 축산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보성축협은 농축협 통합 당시 부실채권 등으로 연체율 37%, 이월결손금 27억원, 출자금 5억원으로 출자금을 모두 까먹고도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내일 그만두더라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시작했단다. 그리고 4~5년 만에 정상화됐다.

인원 감축 후 정예화, 연체율을 줄이기 위한 증액대출 없애기 등으로 일부 조합원들은 극심하게 반발, 조합장실에서 폭력이 난무했고, 피가 낭자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지역 농민과 조합원 그리고 조합을 위해서 못할 일이 뭐 있겠냐면서.

그렇게 어려움을 헤쳐가며 조합 경영 정상화 목표를 달성하면서 적립금을 쌓았다. 지난해 결산까지 자본금 200억원을 적립했다. 도시형 조합들처럼 탄탄한 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앞서가는 조합이 될 수 있는 지 노력하고 또 했단다.

올해는 17200만원 손익을 냈고, 2011년부터 매년 연말 결산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에서 무상사료를 공급하고 있다. 20102억에서 20116, 201210억으로 매년 그 규모를 늘려 나갈 수 있었다. 작년엔 경기 불황과 소비부진 등으로 5억원 밖에 지원하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 조합원들에게 굉장히 죄송스러웠다고 밝혔다.

보성축협은 2012년 구례축협과 농·농 조합 간 협력키로 하고 상생 자금 3억원을 지원했고, 작년에도 5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도 못 사는 데 왜 주냐는 불만이 나올 법한 데 그렇지 않은 것은 줄곧 슬로건으로 내세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축협의 효과 때문이다.

이렇게 조합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조합원들이 조합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이며, 직원들의 단합된 힘의 결실이다. 특히 임직원이나 조합원들이 지역사회 주민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상생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전라도에서 흔히 쓰는 도치기라는 말이 있다. 인색하고 인정이 없는 사람 즉 나만 아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를 말한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협동조합 생존은 지역 주민들의 신뢰에 달려 있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 왔다

보성축협 임직원들은 예금주 모두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때마다 고기세트를 선물한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을 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조합도 없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조합장을 비롯 임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3년 째 고아원을 방문해 김장도 담그고, 해수욕장이나 아쿠아리움, 백화점 등을 들러 신발이고, 가방이고, 옷가지 등을 챙겨줬다. 이젠 가면 먼저 달려와 매달리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기쁘다. 김 조합장은 개인적으로 아이 1명을 입양해 성장시켰다. ‘좀 나은 처지에 있는 우리들이 어려운 아이 한 명씩 맡아서 키우면 보다 나은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마음에서이다.

처음과 달리 말이 이어지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합장실 한켠에 세워져 있는 나무판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새겨져 있어 물었더니 아이들이 한자 한자 새겨 붙인 것이라면서 그것을 볼 때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며 미소짓는다.

보성축협은 올해도 내실경영을 추구한다. 중앙회로부터 무리한 자금을 끌어다가 현재 조합의 상황과 다른 옷을 입히면 모양은 좋게 보일지 몰라도 내실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는 것 때문이다. 조합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농민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론이다. 농협을 위한 것인지, 농민을 위한 것인지 따지고 또 따져봐야 한단다.

김병수 조합장은 1983년 전국 농업후계자대회에서 사례를 발표하고, 새마을 훈장도 받았다. 그런 정신으로 2000년부터 어려움을 버텨냈다. 그는 400여 마리의 한우를 직접 일관사육한다.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소를 돌보고, 매일의 경험으로 조합원들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늘 급수통이 얼었다면 아 조합원들도 같은 고충을 겪었겠구나라고.

당장 조합장의 옷을 벗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그 순간까지 처음의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마음자세로 지금까지 조합을 경영해 왔다는 김병수 조합장의 얼굴에서 자신감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동과 생각의 중심에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있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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