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1000만명의 관객 돌파를 예상한다는 영화 변호인을 봤다. 영화를 본 후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오마주(hommage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 감사라는 뜻)’로 뻔한 스토리일 것이라는 판단은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이다는 문귀로 시작한 이 영화는 누가 봐도 뻔한 내용에 허구라는 말을 삽입해 논란거리를 사전에 차단하려 했던 감독의 고심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법정에 선 변호사 송강호가 고문경찰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1국가는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 한 마디이다. 그 시절엔 많은 이들이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몇 일 씩 어딘가로 끌려갔다 되돌아와선 아무에게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모든 국민이 피해자

 

상황이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은 오죽했으랴. 모든 신문이 검열 당했고, 심지어 대학 학보사에서 조차 마감에 기사 들어내느라 분주했다. 지도교수는 자체 검열로 학생들에게 어용으로 찍히는 불명예를 감수했다. 흥분한 기자들은 데스크와 싸우고 술집에서 울분을 술로 달랬다. 누구는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던지고, 누구는 권력에 편승한 사주에 의해 해직을 당했다. 그 권력의 횡포에 진저리치던 것은 고문을 당한 당사자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그 공포에 침묵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까마득한 후배에게 전화했다.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권력의 횡포 때문에?” “아니요. 그 자리의 담당검사와 판사는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요.” “”.

그건 지엽적인 것이니 그것으로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면서 나의 분노는 세월이 지나면서 정형화됐다고 판단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분노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것은 변명이다. 젊은 시절 기성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도 정작 자신이 기성세대에 편입된 후 사회가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을 그저 먹고 살기 위해로 설명하기엔 너무 궁색하다. 언제부턴가 무관심해지고, 나만을 생각하게 된 이기주의가 습관처럼 마음을 병들게 한 것이었다.

 

드라마틱한 선거

 

그리고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 선출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곱씹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다. 당사자들은 죽기 살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3자에게는 남의 일이라 그렇다. 이번 대표 선출만큼 드라마틱한 선거도 없었다. 누가 봐도 한 쪽이 확연하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역전됐으니 더욱 그랬다.

한 쪽은 표를 잃으면서도 승리를 장담했고, 다른 한 쪽은 야금야금 상대방이 자신했던 한 표 한 표를 빼앗아 왔다. 마지막 순간엔 서로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과는 동표였다. 양 쪽 모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승자는 뒤좇던 자였다. 이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것은 바로 전국의 조합장들이다.

 

보복으로 보인다고?

 

상기된 승자는 조합장들 앞에서 감사의 예를 올리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의 발전을 기약했다. 그러나 많은 직원들은 피바다를 예상했다. 그동안 승자가 겪었던 설움이 어떤 것이었는 지 알기 때문이고, 그의 성정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대대적인 보복(?)’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뒤집어 보면 그로 하여금 보복을 하게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승자의 미덕은 화합이다. 화합은 약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동등한 자끼리, 우월한 자가 약한 자에게 손을 내미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확연히 갈라진 지역과 자신을 지지한 조합장과 그렇지 않은 조합장의 수가 같다는 점에서도 화합은 시급하다. 승자는 말했다. 국내 축산업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노라고. 가장 기본은 지연·학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선거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 직원을 솎아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보복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침묵한 다수의 직원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향후 제대로 축산경제를 경영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실무적인 일을 전담해야 할 직원들이 정치적이 되면 중앙회와 조합 연계의 실핏줄이 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 권력의 단 맛을 추구하면서 과잉충성하고, 본질을 왜곡시켜 직원 간의 괴리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쭉정이는 제 때 걸러내야 벼가 잘 자란다. 쭉정이가 판치는 분위기에서는 풍년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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