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단체장이나 기관장 등이 취임하면 늦어도 몇 주간 업무 파악을 한 후 출입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해 그동안의 업무나 앞으로의 경영과 관련해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것이 상식이다. 이를 통해 해당 주민이나 국민들이 미래를 본다.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관심을 끈 이유는 취임 후 2년에 접어든 시점에서 열린 것이라 그렇고, 지난 1년 동안 보수와 진보’ ‘종북과 종박등 국론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과의 불통에 대해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여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62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은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 됐다.

이날 회견은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모든 문제들을 비정상의 정상화’ ‘생떼를 인정하지 않는 법과 원칙으로 덮어버렸다. 특히 불법의 떼쓰기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 표명은 그동안 농민들의 요구를 떼쓰기로 폄훼한 정부의 입장대로라면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떼쓰기 용납 않는다

 

이 대목에서 그 말만 놓고 볼 때 합법적 시위나 요구는 신중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귀 기울일 수 있다는 말로 들려야 할텐데 전혀 그렇게 생각되어지질 않는 것은 왜일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보면 모순되는 것이 태반이기에 그렇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과 국민의 혈세로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그 행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뜯어 고치는 것이 정상화임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원전 마피아가 서류 조작, 상납 등 온갖 비리를 저질러 블랙 아웃의 위기까지 몰고 가며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을 보면 참희안한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비리의 책임으로 일괄 사표를 제출했던 1급 이상의 간부 248명 중 정작 물러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과 인수위 시절 강조했던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뿌리뽑기도 실천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횡행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돼야 하나.

사회공공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현재 295개 공공기관 중 77명의 기관장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임명됐고, 정치권이나 주무부처 관료들이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로 볼 수 있는 기관장이 34명으로 44.2%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1월 초까지 후속인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이나 과도한 복지 등 부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낙하산 인사탓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은 인사로 후한 대우를 받으며 잠시 머물다 갈 예정이니 책임감도 없다. 그저 임기동안 무탈하면 그만이다. 노조와의 마찰도 귀찮다. 국민의 혈세는 눈 먼 돈이다. 낙하산 인사의 당연한 귀결이다. 어떤 것이 비정상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혈세 눈먼 돈

 

떼쓰기란 사전적 의미로 부당한 일을 해 줄 것을 억지로 요구하거나 고집하는 것이다. 굳이 불법이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다. 하지만 왜 떼쓰기(?)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것이 떼쓰기인지 정당한 주장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자신도 모르게 어떤 결정이 이뤄지고, 그 결정으로 인해 정신적·경제적 불이익을 당했다면 결정을 수정하거나 또는 폐기하라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 합당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농축산인들의 입장이 바로 그렇다. 잇따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입은 피해와 앞으로도 입게 될 피해는 그들이 원하던 것들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생각을

 

국가 경제발전 기조라는 큰 틀에서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정책 결정테이블에서 배제당한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장은 떼쓰기로 왜곡되고,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니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의 떼쓰기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들었을 때 모골이 송연했을 농축산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딱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농업문제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으니 이젠 농림축산식품부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당연히 떼쓰기는 용납돼선 안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떼쓰기를 조성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억울함에 눈물 흘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고, 화합이며 대단결로 이어지는 끈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