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공전의 히트를 친 TV 드라마 첫사랑에서 가난한 집 21녀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연기파 배우 김인문 씨가 작은 방안에서 홀로 불효자는 웁니다를 구슬프게 부르면서 서럽게 우는 장면이 있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부르며 노인에 가까운 성인의 남자가 그렇게 슬피 운 모습을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 본 적이 없었지만 어머니를 그리며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얼마 전엔 딸 아이가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가는 도중 아빤 좋겠네?” 물었다. “?” “아빠 엄마 보러 가잖아.” “”. 딸 아이도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는 내 모습이 자신이 보기에도 즐거워 보였던 모양이다.

 

나이 따라 인상 변해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보이지만 그만큼 자신이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부모가 있었다는 것도 까먹는다. 그러다 문득 길을 걷다가, 혹은 업무를 보다가 적막이 찾아오면 갑자기 서글픔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 온다. 눈물바람과 같이.

항상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어머니와 달리 남자에게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인상이 변한다. 4살 때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슈퍼맨, 7살 때는 와 아는 것이 정말 많다’, 초등학교에 들어서면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아빠는 모르는 게 많아’,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너무 나요.’, 대학시절 쯤 되면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그러다 사회 초년병 시절엔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네요’, 40살이 넘어서서야 비로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로 바뀌고, 50살 쯤엔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 60살엔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텐데아쉬움과 그리움에 목이 매인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아버지엔 대한 글짓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제목 : 아빠는 왜?.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이해해 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 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미국 링컨대학 학생 5만 명의 설문조사 중 아버지와 TV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이라는 항목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68%의 학생이 TV 쪽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절반은 자녀가 고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고 생각하지만 똑같은 질문에 자녀들은 단 4%만 아버지와 의논한다고 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서글픈 동상이몽이다.

 

서글픈 동상이몽

 

항상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던 아버지가 요 몇 일 일찍 들어오니 어색하다. 저녁식사가 그렇게 가시방석일 수가 없었다는 대학생의 말. “어쩌다 아이들과 저녁식사라도 하려고 일찍 들어가니 친구와 먹으러 나가거나 먹고 왔다면서 제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라는 아버지의 씁쓸함.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들, 직장인들의 삶이란 그렇다.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정보다는 일에 매달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어쩔줄 몰라 한다. 무뚝뚝한 것이 남자의 도덕인 양 배워왔으니 누굴 탓하랴.

어느 날 문득 나는 집안에서 세탁기도 못 돌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먹는 돈버는 기계가 되어 있었어요.” 그렇게 서글퍼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가장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이 바로 사랑합니다였다.

 

무관심한 사람 아냐

 

그런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리워할 땐 이미 그 분은 세상에 없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30도 채 안되는 거리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데 30년이 더 걸리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할 뿐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 웃음의 2배 쯤 농도가 진하고, 울음은 열 배이다.

아버지는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날마다 자책하는 사람이다.

느티나무처럼 버티고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속으론 한 없이 연약한 사람이 아버지이다. 연초이다.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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