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씩 끌고 다니며 때리고 또 때리고. 담뱃불로 지지기, 자기 기분에 따라 머리고, 가슴이고, 복부고 사정없이 구타한다. 주변에 아이들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 그러니 안 보는 곳에서는 오죽할까.

시도 때도 없이 나오라고 한다. 담뱃재가 들어 있는 맥주를 먹으라고 강요하고, 심지어는 바지도 벗으라고 한다. 한 번 그렇게 모질게 당하면 폭력에 저항할 힘을 잃는다. 인간의 자긍심이 서서히 말라간다. “나는 개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그렇게 강요된 의식은 삶의 풍요를 알기 이 전에 존재 가치마저 무너뜨린다.

인격의 형성이 자리 잡기 전에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면 그의 삶 자체가 완전히 망가진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까지 그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도와 달라, ‘누가 나 좀 도와 달라고 소리없이 울부짖는다.

20여 층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서기까지 주변을 돌다가, 억울함과 답답함 그리고 폭행에 대항하지 못한 비겁함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다가 난간에 올라선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파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저 깊은 아래를 내려다 본다.

 

소리없는 울부짖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나의 종이, 화풀이 대상이 죽었단다. 어이가 없다. 별 희한한 놈이라고 그렇게 약해 빠졌으니 죽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부산하다. 안 오던 학교엘 다 오고 애들끼리 놀다가 그런건데 뭘 그런 거 가지고 심각하게툴툴거린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별 일 아니다. 정 심각하다 싶으면 사과하면 끝이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이지메(집단 따돌림)’의 대상은 항상 자신보다 약한 쪽으로 향한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학교에 국한된 것일까?

지금 농민의 심정이 꼭 이렇다. 배추고 쌀이고 풍년이 들었는 데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값이 폭락하니 힘들게 농사지은 배추를 수 만톤 깔아 엎어야 한다. 육우 송아지 값이 단돈 1만원도 되지 않는다. 사료를 덤으로 줘도 가져가지 않는단다. 운송비까지 부담하게 되면 이게 더 적자다. 축사에서 멀뚱멀뚱 바라보는 송아지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굶겨 죽일 수도 없다. 미칠 노릇이다.

가격이 바닥을 치며 노력의 대가도 건지지 못했던 한우농가들이 추석 이후 조금 나아지면서 한 숨 덜겠다 했더니 느닷없는 한·호주FTA협상 타결이란다. 그리고 정부는 몇 일 후 설명한다고 한다. 재벌들의 사업을 위해 좀 양보하란 이야기다.

가뜩이나 미국을 제치고 쇠고기 최대 수입국으로 자리 잡은 호주와 협상을 했으니, 여기에 관세까지 철폐되면 결과가 어떤 지는 안 봐도 훤하다. 세이프가드가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정부는 FTA 피해 보상금 범위에 한우와 한우송아지를 넣고 할 만큼 했다고 했다. 농가는 알기도 어려운 수입기여도를 삽입해 피해액을 축소시켰다. 한우협회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시작했다. 참 힘겨운 싸움이다.

 

예고없이 일방통보

 

일부 학자와 일부 언론들의 행태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농가를 마구 이지메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강요한다. 정부가 환경을 앞장세워 축산업을 규제하면 그들은 오염산업으로 낙인을 찍고, 사라져야 한다고 간단하게 매도한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전형적인 기회주의를 표방한다. 광고와 갖가지 혜택을 제공하는 재벌들을 향해서는 날 선 공격을 하지 않는다. 강할 땐 건드리지 않다가, 약하다 싶으면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아예 거덜을 내면서 그때 들고 나서는 것이 바로 언론의 공정성이요, 국민의 알권리이다.

 

행복할 권리 달라

 

스스로 행동은 남성우월에 인종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닌 척 가장하고, 또 다른 권력을 남용하면서도 약자의 행복한 삶을 살 권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체제 비판이요, 불경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입히면 죽일 듯 달려들어 물고 뜯는 행태를 보면 저들이 어떻게 보편적 가치를 찾고, 객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 궁금하다. 교묘하게 자신의 논리에 맞게 편향된 소리를 마치 균형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농업과 축산업에 대한 조예가 깊은 듯 그들에게 친농민의 옷을 입히고,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 이는 앞장서서 호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것들을 얻었다.

프랑스 혁명에 불을 지핀 것은 약자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시킨 것은 농민들의 봉기였다.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농민들이 봉기하면 귀족들이 그렇게 유지하고 싶어했던 체제도 한 번에 무너진다고. 그것이 약자의 무서움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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