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상가로, 시인으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투사로, 실천운동가로 한국의 20세기를 빛낸 고 함석헌 선생은 대한민국 국민이 민족의 기상을 품고, 바른 시민사회를 실천하기를 희망하면서 많은 서적을 저술했다.

역사가 바로서야 민족의 미래가 바로 선다며 저술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대륙을 호령했던 한민족의 기상이 사그러 들면서 끊임없는 외침 속에서의 고통과 한을 담담하게 기록하며 이렇게 끝맺음했다. ‘아직도 한민족은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변은 급박한 데

 

역사 속에는 순간순간 아쉬움의 대목들이 있다.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또는 이런 선택을 했으면 하는 가정이다. 그 바탕에는 태반이 아집이나, 정쟁(政爭)이 있다. 똑 같이 보고 있는 상황을 인식하는 데 내 편과 네 편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외부의 침략에 맞서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힘이 결집되었을 때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 최근 중국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함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대응도 강경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정부도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마라도·홍도 영공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영공을 통과하는 데 중국에게 사전 보고할 이유가 없다. 안하무인격인 중국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정부가 모처럼 발빠른 대응에 나섰고, 마땅히 그랬어야 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시 구한말의 그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물론 미국은 우리 정부의 이같은 입장에 반대다. 자칫 한반도를 둘러싼 한중일 3국의 갈등이 강대강(强對强)의 국면으로 치달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돌연 발표를 철회했다.

 

근거없는 자존심만

 

이즈음 한 발 물러서서 우리의 ‘KADIZ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는 무엇에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 주변국들 보다 열세인 군사력을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말이다. 이어도는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에서도 약 150km 떨어져 있다. 유사시 대구기지의 최신예 F-15K 전투기가 출격해도 40, 현지 상공에서의 작전시간도 20분에 불과하다. 공중에서 전투기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가 있다는 소리도 못들었다.

때문에 우리의 입장에서는 F-15K 이외의 다른 전투기는 아예 작전 출동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일본은 현재 4대와 추가 4대를 도입할 계획이고, 중국은 18대의 공중급유기를 배치 중에 있다. 우리는 4~5년 이후에 도입할 계획이다. 해군력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무슨 근거없는 자존심인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부의 외교력이나 상황 대처능력이 제대로 되어 있는 지 의문이 간다. 국가 통상문제도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국가들과의 FTA를 체결하려고 뛰어다니다 이젠 갑자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 Pecific Partnership) 참여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무엇이 기준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무슨 효과가 있는 지, 정부가 정확히 말해주지 않으니 국민도 당황스럽다.

 

참여 환영 성의 보여야

 

당장 미국은 참여는 환영하지만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농업과 제조분야의 문을 개방해야 한다는 은연 중의 압력이다. 일부 국내 경제연구소들은 TPP참여는 국내 총생산이 2% 이상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마도 정부는 이를 조금 더 부풀려 국민들에게 희망적이라고 선전할 것이다. 농축산물 강국들에게 국내 농축산업을, 일본에게는 자동차·제조·기계산업을 개방하게 되면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농업은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난해 일본과의 농수축산 무역에서 178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의 농수축산물 수출의 물꼬가 트이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참고로 한국과 일본의 교역규모는 올 한해 1032억 달러였다.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안동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피해의식에 빠져있지 말고 좀더 과감하게 도전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서 세계로 뻗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수위 시절에도 농업은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농촌 현장을 떠나는 농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만큼 농촌에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의례적 말로는 이들의 흐르는 눈물을 달래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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