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개입 정책을 써서 경제발전을 추진했고, 그 중에는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까지 있었다. 개발도상국들은 보호무역, 외국인 직접 투자 금지, 산업 보조금, 심지어 국영은행, 국영 기업 등의 인위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철강이나 자동차 산업과 같은 자국의 능력을 벗어나는 산업들을 육성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경제 침체, 잘못하면 경제적 재앙이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정신을 차리고 자유 시장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했다. 이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취한 개발도상국일수록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나는 되고 남은 안된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 중 대부분은 시장 지향적 개혁 기간보다 이른바 어두운 과거시절에 훨씬 더 빠른 성장과 비교적 고른 분배를 이뤘고, 금융위기도 훨씬 적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이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깝다.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해 현재 잘살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보호무역과 정부 보조 등을 통해 오늘의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보호 무역주의, 정부 보조금 지원 등의 정책이야말로 요즘 부자나라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하면 안된다고 설파하는 것들이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중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자국 내 산업을 관세와 보조금 등으로 보호해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후 그 산업을 주축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산업적 우위를 점유한 1860년대 이후에야 자유무역을 시작했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국적 숨기기 주효

 

미국이 18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경제도약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고수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막연히 국가 간 무역장벽이 무너져 어쩔 수 없이 외국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유아적인 사고일 뿐이다.

하면 된다는 군대식 사고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열에 진입했다는 소식은 기사거리이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사건들이다. 개발도상국들과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발전의 모토로 삼고 싶어하는 것도 맞는 얘기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아무 지방에나 가면 현지인들 사이에서 삼성 스마트폰과 현대·기아차가 어느 나라의 제품인지는 몰라도 좋은 이미지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그런데 그들 브랜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시장점유 전략에 한국은 없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자리 잡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말이다. 때문에 오히려 한국 브랜드를 숨기는 전략이 먹혀 들어갔다고 한다. 현지에 가면 현대를 켄타이로 부르는 경우도 있고, 그런 까닭에 일본 기업으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단다. 기업들도 그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국적을 밝힐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었으니까.

 

한국 경제 자체는 아냐

 

시장 자유화는 이런 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민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 이들 한국의 경제를 어느 정도 이끌지는 몰라도 한국 경제 그 자체는 아니다.

산업에는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철강 등이 국가의 중공업을 이끈다면, 과학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을 지탱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호돼야 하는 것이 농업이다. 이는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흔들리면 국민 생활 자체가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의식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기 때문이다.

농촌은 지금 고령화와 공동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 층들의 귀농·귀촌을 유도하는 다양한 정책이 실시되고 있지만 무차별적인 자유무역으로 농업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면서는 백약이 무효하다. 더욱이 농산물이 대풍임에도 갈아엎어야 하는 지금과 같은 농산물 수급정책으로는 빈익빈 부익빈만을 부추기는 격이다. 대다수의 농민들이 흉년이면 흉작으로 못살고, 풍년이면 가격하락으로 또 그렇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 십년 앞의 세계 기후 변화를 연구한다. 이를 통해 거대 자본들이 농산물을 무기화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농산물도 충분히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모양이다. 우리만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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