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전의 한 대도시형 농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좋아 보이는 건물인 데 다시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당시 비데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리모델링이 끝난 직후 그것까지 생각을 못해 다시 꾸미는 중이었다.

관심이 간 것은 그 조합이 우수조합으로 몇 번씩 선정됐으며, 때문에 조합의 돈을 헛투르게 돈을 낭비하는 곳도 아니었고, 노조가 그것을 주장한 것도 아닌 데 굳이 조합장이 그런데까지 신경을 쓰고 있느냐였다.

 

34각의 형태

 

너무 좋으면 조합원들이 뭐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힐긋 쳐다보면서 던진 조합장의 답변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기자가 왜 그렇게 고루하느냐는 힐책성 멘트에 이어 영문을 몰라 쭈삣대는 동안 그 조합장은 참으로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합은 32각과 같고 세발로 지탱되는 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과 직원과 조합장이 3인이고 세발입니다. 함께 끈으로 발을 묶고 장거리 달리기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가 삐끗하면 달리지 못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합원은 출자한 주주이고, 그 돈을 잘 관리해서 불려주는 것은 직원의 몫이며, 조합장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조타수 역할을 합니다.

조합원이나 그들을 등에 업고 직원을 하대하거나 하인부리 듯 하는 것은 참으로 저급한 짓입니다. 조합을 말아먹을 작정이 아닌 이상 내가 존중받 듯 직원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뽑아주지만 그 조합을 끌고 가는 주춧돌은 바로 직원들이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조합원들이 조합을 안방처럼, 사랑방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직원들의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상호존중이 체질화되면 조합원을 부모처럼, 직원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애정이 생깁니다. 조합장이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순리대로 조합을 운영하면 되는 것을

 

존중은 귀를 여는 것

 

1998~1999년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이 비리의 온상이라고 지적받으면서 여론과 외부로 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직원의 자녀들까지 부모가 협동조합에 근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협동조합 탐방을 다니면서 많은 조합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시각이 정립된 시기는 아마 그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존중이라는 말의 의미는 참 크다. 그 단어 하나를 기준으로 분란과 화합이 확연하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존중이란 나와 상대방이라는 상호방향이지만 큰 조직이 작은 조직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직책이 높은 사람이 낮은 직원에게,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로 향할 때 더 따뜻하고 더 감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내 분란의 시발점은 존중의 증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한 때 직원들 존경의 대상이었던 대표가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지만 출범식도 갖지 못한 채 분란의 중심에 선 노조 역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다수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일말의 기대감 심어

 

경우야 어떻든 축산경제 직원들은 내부의 일만 꺼내려 들어도 먼저 손사레를 친다. 부끄럽다는 것이다. 중앙회 안에서는 농업 쪽 보기 그렇고, 밖에서는 축산인들 보기 그렇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다. 이야기 꺼내지 말자고 먼저 말한다. 그러는 와중에 대토론회가 제의됐고, 노사가 모두 받아들였다. 직원들이 당연히 결렬될 것이라 여겼다가 합의했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도 반기고 있는 것은 지금의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축산경제의 단단한 틀을 차제에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갈등에서 순기능이 있다면 그나마 직원들에게 강한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다.

대표는 전국의 조합장들에게 상황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당연하다. 조합장들의 뜻으로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명서를 보내느라 바쁘다. 이도 당연하다. 그러나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당사자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대토론회는 성토의 장이 결코 아니다. 상명하복의 장은 더더욱 아니다.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한 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보자는 것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그 감정을 깨는 이는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만큼 판도 커졌다.

갈등은 사회를 발전시킨다. 때때로 조직이나 사회에 긴장을 야기시키면서 정지하려는 속성을 깨기 때문이다. 종기가 났을 때는 곪을 때까지 기다려야 환부를 도려낼 수 있다. 현재의 부끄러움을 딛고 일어설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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