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나는 사업인 줄 뻔히 알면서 왜 축산물 판매장을 내자고 하는 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달라.”

대도시형 축협조합장이 대의원들에게 축산물 판매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대의원이 따진다. 아무리 대도시형 협동조합이 향후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사업을 활성화해야 하고 그 축이 축산물 판매사업이라고 설명해도 요지부동이다. 다른 대의원들도 반대만 하지 않을 뿐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들 중 몇몇은 아예 축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있다. 설비업체나 축산과는 거리가 먼 석가공 회사의 사장 명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축산물 판매장을 개장해도 조합원이 생산하는 축산물만으로는 팔 물건이 채워지지 않는다.

사업 규모만 해도 1조는 훌쩍 넘어 2조에 가깝거나, 2조를 넘는 대도시형 조합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다.

 

2만여 농가 생업 접어

 

농촌형 조합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촌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축산업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폐업하는 농가가 늘고 있어 관내 조합원 수가 갈수록 적어진다.

한우농가의 경우 최근 1~2년 사이 2만이 넘는 농가가 생업을 접었다.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농촌형이나 대도시형 조합 모두 조합원 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축산업을 그만둔 기존 조합원이 그대로 조합원 적을 두고, 편법으로 조합원 수를 유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합에 대한 충성도를 기대하기 어려워, 조합이 사업을 전개할 때 제동이 걸리고, 충성도 높은 진성조합원까지 그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을 자신의 사리에 맞게 이용한다. 품질이 좋은 축산물 등은 조합을 통하지 않고 넘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조합을 통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 한다.

한돈협회를 중심으로 한돈농가들이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의 돼지가격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면서 공판장의 가격체계에 문제 제기를 해 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출하되는 돼지의 상태로는 한돈협회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비협조적인 조합원의 형태가 그렇지 않은 조합원 또는 농가에게 끼치는 피해의 가장 적절한 사례이다.

왜 이 시점에서 협동조합과 조합원의 문제를 제기하느냐 하는 질문에는 축산물 유통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협동조합형 축산물 대형패커사업의 첫 단추가 일선조합의 역할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단추 잘 끼워야

 

일선조합은 개별농가 중심의 생산과 출하방식을 산지 중심으로 조직화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거래 교섭력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전체가 어긋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동조합형 축산물 대형패커사업과 관련해 최근 현행 농협법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이병오 강원대 교수가 발표한 한우 유통 개선과 가격 안정화 방안에 따르면 농협중앙회가 대형 패커 역할을 하고, 지역축협이나 농협 하나로마트가 소매기능을 담당하면 유통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조합원 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점도 확실히 했다.

현행 농협법 시행령은 조합원 하한선을 지역조합의 경우 1000, 특별시나 광역시 그리고 도서개발촉진법에 따라 농가 호수가 700호 미만 지역은 300, 품목조합은 200명 이상으로 조합 설립인가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설립인가를 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설립인가를 받은 후에도 조합원 숫자가 기준을 미달하게 되면 정부로부터 취소처분을 받거나 합병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부실 조합원, 무자격 조합원, 사업 미이용 조합원 등이 양산되고 있지만 조합에서는 이들을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합원 수 과감히 낮춰

 

이들 때문에 조합이 필요한 사업을 위해 예산을 짜기도 힘들고, 예산의 분산 또는 충성도가 높은 진성조합원의 혜택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정부나 농협중앙회가 무자격 부실조합원을 정리하라고 지도해도 조합에서 손을 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일선 조합장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선듯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일선 조합장들은 건전한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서는 조합원 수를 현실에 맞게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농가의 고령화에 대처하고 정예화와 규모화를 감안하면 지역조합도 품목조합과 마찬가지로 200명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축산물 유통구조의 개편은 농협중앙회의 지도·지원 그리고 관리·감독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체계가 갖춰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현실성 있는 제도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 실핏줄 역할을 하는 일선조합들의 정예화가 전체 유통구조의 전반적인 개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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