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것이 아름답다 또한 평화롭다

편리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바쁜 21세기는 물질적 풍요는 있지만 정신적 빈곤은 심화되는 시대라면서 마음의 여유를 얻고 나눌 수 있는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실천하자고 주장하는 운동이 일고 있다.
일본의 시즈오카현의 가케가와시는 지난해 12월을 '슬로 라이프의 달'로 정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치르고 있다. 12㎞를 45분에 순환하는 '느림보 버스'가 시내 주행을 시작했고, 30㎞의 거리를 4∼5 시간에 달리는 슬로 사이클링도 선을 보이고 있다. 가케가와시가 내세우는 7가지 슬로건은 천천히 걷자는 슬로 페이스, 전통 의상을 입자는 슬로 웨어, 가급적 천연 식품을 먹자는 슬로 푸드, 오래된 주택에서 진정한 편리함과 멋을 찾자는 슬로 하우스, 느긋하게 나이 들어가자는 슬로 에이징, 무농약 유기농을 전하는 슬로 인더스트리, 평생 교육을 실천하자는 슬로 에쥬케이션이다.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의 물결이 일본 열도에 일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아가는 그래서 조악해도 느긋하고 자연스러움에 생활의 중심을 두자는 것이다. 이러한 슬로(천천히)는 시간 개념이라기보다 바람직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빠른 것만을 추구해 온 현대문명의 위험이 이제 코앞에 다가선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진정한 '발전'이고 '개발'인가, 경제 성장주의를 뛰어넘는 총체적인 발전 구상은 무엇인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발의 결과로 야기되는 빈곤과 실업, 그리고 사회 통합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이념 대결과 핵전쟁 위기로 점철되었던 냉전이 끝난 후 세계 자본주의 경제는 많은 발전을 이룩했지만 지구촌의 안정은 오히려 불확실해지는 이른바 차거운 평화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생활의 최종적인 가능성이자 불가능성일 수도 있는 세계공동체의 실현이란 인간 희망의 끊임없는 지향임과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과제일 수밖에 없으리라.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상주의나 현실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보다 건전한 기준이 요구된다.
세계 감시연구소에서 20세기말, 21세기초 인구와 소비, 환경, 자원의 추세를 연결시켜 미래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내용에 따르면 사람들의 삶과 국가 정책상 큰 변화없이 현재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할 때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이른바 '성장의 한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첨단 농업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총 식량생산량도 201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급속한 인구 증가, 자원 낭비형 소비 그리고 빈곤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 성장에 대한 이념, 가치관, 소비패턴 등 삶의 기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하리라. 지금처럼 인간 사회가 경주마처럼 뛰는 이상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라.
지구촌의 환경도 극도로 악화되어 있어서 지구상의 가축중 30%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계속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20년경에는 생명체의 약 20%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생명체의 멸종은 단순히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일부 동식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농업과 생존, 생태계의 유지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의 교활한 이기심 때문에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인도인들에게는 '만병 통치약' 또는 '축복받는 나무'로 불리는 네엠나무가 미국이 따낸 특허권 때문에 그레이스사라는 초국적 기업이 그 나무를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독점하고, 나아가 자연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전승되는 것이며 지혜는 여러 사람들의 작은 기여가 오랫동안 누적되어 함께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유의 가치가 있는 자원, 지식, 문화 유산에 '소유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깨달음의 실천이 참으로 절실한 때가 아닐까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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