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 해결없이 농촌을 살릴 수 없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명분이 어떻게 해서 세계 도처의 농업과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을까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러한 시장주의적 경제활동과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제 사이의 충돌을 외면한 채 자유주의라는 세속적 타협을 통해 적당히 안주하려 한다면 그처럼 무책임한 일이 있을까.
세속주의라는 소박한 신념은 어떤 의미에서 궁극적인 해답이라고 믿을 만큼 은밀한 종교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신이 그렇게 확신했던 자연의 정복이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동시에 위험에 빠뜨렸듯이 이런 형태의 세속적인 신념은 절반정도는 참일지라도 또한 절반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구조조정은 투기적 성격의 금융자본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 맹목적 위력은 민족 주권, 문화적 가치, 사회적 시스템 모두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뼈아픈 성찰을 통해서 우리의 방향을 설정할 때이다.
이렇게 해서 21세기 그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정립해 나가야만 하리라.
식량안보를 염려하는 농민단체나 환경단체들은 소규모 농업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소규모 농업이 대규모 농업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엄청난 환경 비용을 논외로 하더라도 대규모 농업이 식량 확보를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소규모 가족농을 살리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상업농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나서 농가 부채는 더욱 악화일로에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문제가 농업을 살리는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의 대책이라면 금융위기에 대한 근원적 접근이 아니라 농가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달래주는 면피성 대안이었다 하리라.
목표나 수단 그 실행의 의지가 다같이 결국은 잘못된 결과를 낳고 말았을 것이다.
농가부채 대책은 포괄적이고 획일적인 방안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해야하며 이자율 인하나 상환 기간연장 등의 부채구조 재조정 대책보다는 재무구조를 재조정할 수 있는 그래서 부채와 자산을 축소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농업적 회생이 불가능한 농가에 대해서는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순조로운 탈농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미국도 1980년 들어 농업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심각한 농업금융 위기를 맞았었다. 그 타개책으로 기금 조성을 통해 저리 융자와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상환 기간 유예 등의 농가 보호 대책을 세웠었다. 그 중에서도 가족농 보호법을 제정해서 부채 구조를 조정함으로서 파산 농가를 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자작농 유지자금 등의 마련을 통해 이차를 보상해 주면서 20년이나 25년이라는 장기 대여를 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농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현실적 지원인 셈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시점에서 2천만원 이하 예탁금 이자에 대한 비과세 조치의 폐지란 협동조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농가 부채의 해결에도 역행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정부는 과세의 형평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농간의 소득 격차가 73%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비과세 예탁금이 조합 예금의 절반에 가깝다. 단계적인 폐지를 통해 적응을 시킨다고 하지만 그 비과세 예금의 절반만 빠져나가도 대부분의 조합이 적자 조합으로 돌아서고 말 것이다. 협동조합 그 본질적 구조의 정당성을 떠나서 조합이 무너지고 나도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넌센스일 뿐이다.
아담 스미스도 '보다 넓은 이익' 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편주의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 자신도 자본주의의 맹점을 늘 경계하고 있었던 셈이다.
농업을 살리는 일이 그 넓은 이익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고, 농가부채 해결이 또한 농업을 살리는 첫 번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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