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농업여건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적 선진국들은 무역 자유화가 식량안보의 관건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무역 자유화를 추진한 개도국은 거의 모두 식량 생산과 그 생산성이 감소했으며, 농민들의 지위와 식량안보 수준은 선진국이나 개도국 할 것 없이 모두 낮아졌다.
그 실례로 멕시코는 구조 조정과 NAFFA(북미자유무역협정) 가입에 따른 시장 개방으로 수천 년간 유지해 오던 식량안보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멕시코의 주된 생산 곡물인 옥수수마저 미국에서 수입하는 형편이 되었고, 농민의 절반이 굶주림의 고통에 빠진 것이다.
사실 1970년대부터 지구촌은 모든 사람들이 먹고 남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해 왔으나 인구의 5분의 1이 계속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데에는 이렇게 식량 수급의 구조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문제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농산물 개방 압력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다. WTO의 슈트어트 하빈슨 농업협상 의장의 모델리티 초안도 UR협정 보다 관세와 보조금의 감축 폭을 2∼3배 높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보조금 등의 감축은 각국의 다양한 농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UR방식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때에 OECD마저 우리나라가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 대비 농업보호수준 비중이 가장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도 시장 지향성 등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계량화하기 쉬운 국내외 가격차, 정부의 재정지출 등만을 고려한 것으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까지를 평가하기엔 부적절한 것이다.
아무튼 한국의 농업은 호당 평균 경지 면적이 1.3㏊로 매우 영세하며 농가소득의 절반을 농업 소득에 의존하는 등 소득 구조가 취약해서 아직도 농업은 개도국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농산물 시장의 갑작스런 개방은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일이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연 3%의 성장을 기록하던 농업생산도 농경지 개간의 절대적 한계 때문에 이제 연 0.5%의 성장률만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문제와 더불어 식량 증산의 문제도 초미의 과제인 것이다.
이런 때에 관심을 끄는 것은 IBRD가 발간하는 '세계 개발 보고서'이다. 그 보고서에서는 소규모 농업이 대규모 농업 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유엔의 식량기구에서도 대규모 단종 재배방식이 지속 가능한 농업이 되지 못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소규모 농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규모 농업의 의미는 곧 지방화된 농업을 말한다. 지방화된 농업은 단순한 먹거리 해결의 문제를 넘어서 먹거리에 대한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이 점이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핵심인 것이다. 단순한 시장주의적 경제 활동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그래서 함께 삶을 영위하려는 우리들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흔히 세계화는 불평등을 수출하는 대신 자유를 수입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다수 나라들이 불평등을 수입하는 대신 소수의 나라들만 자유를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리우" 환경회의에서 채택된 '리우 선언' 제1조는 "인간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이 논의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향유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역의 농업을 그 나름의 방식대로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길이며, 환경이 지켜져야 농업 생산도 가능한 법이다. 따라서 우리와 같이 농업 여건이 어려운 국가는 농업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 수단들이 더욱 필요하다. 앞으로 있을 농업 협상에서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이 충분히 고려되었으면 한다. 이 또한 지구촌 모두가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의 실천이 아닐까 한다. -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